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88

함께 걷고 싶은 ‘초동 연가길’ /이시은

함께 걷고 싶은 ‘초동 연가길’ 이시은 내게 가을꽃으로 각인 되어 있는 꽃은 코스모스였다. 코스모스꽃은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하나둘 피어난다. 먼저 꽃눈을 틔운 꽃들은 이맘때면 까만 씨앗을 품고 늦게 피어나는 꽃송이들 사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을 뻗어 씨앗을 따 모아 본다. 심을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씨앗이라도 따 모아 두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다. 코스모스는 어린 시절 동심에서부터 지금까지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며, 많은 추억을 간직한 꽃이다. 푸른 물이 떨어질 것 같이 고운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가는 가을이면, 코스모스를 찾아 나서는 것이 가을을 맞는 나의 행사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코스모스꽃을 보기 위해 공원을 찾아 꽃길을 걷곤 했다. 함께 활동하는 시인들이 모여 시화전을 하는 공..

밀양 수산제 역사공원을 둘러보고 / 이시은

밀양 수산제 역사공원을 둘러보고 이시은(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농사를 짓는 것은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하여도,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선이 하늘을 날고, 인공위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곡물 생산국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여러 나라가 곡물이 유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적어도 식량만은 자급자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식량이 확보되지 않는 것은 목숨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

오봉서원과 외갓집 풍경 / 이시은

오봉서원과 외갓집 풍경 이시은 (시인. 수필가) 고향 밀양시에서 보내오는 책자를 보다 유독 마음을 끄는 글이 있었다. 초동면 오방리 을 소개한 글이다. 그 곳은 창녕조씨 문중의 서원이다. 내가 외갓집에 갔을 때 외가 언니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던 곳이다. 외가댁에서는 그 곳을 큰 제실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외가댁의 독 제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에 모셔진 취원당 曺光益조광익 할아버지의 후손들로 ‘오방동 조씨’라고 부를 만큼 창녕조씨의 집성촌이었다. 외가 동네에 가 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외숙들께서 돌아가시고 외사촌들이 모두 직장을 따라 타지에서 살아 그 곳을 찾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 외가댁 막내 오라버니의 결혼식에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행복을 가꾸는 마음 밭 / 이시은

행복을 가꾸는 마음 밭 이시은(시인. 수필가) 하얀 옥양목으로 만든 커튼처럼 창을 메우고 있던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이 지고, 어느새 연녹색 잎이 돋아나 창 가득 잎새들이 바람결에 손을 흔들고 있다. 거리 두기 제한을 풀면서 코로나로 집안에서 움츠렸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듯이, 며칠 사이에 움이 튼 나뭇잎이 몰라보게 자랐다. 어느 해 보다 더욱 봄을 알리는 꽃들이 반갑고, 새잎들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화원을 지나다 곱게 피어 있는 꽃을 사 와서 창가에 놓았다. 진분홍과 자주색 꽃이 녹색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화사하고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따끈한 차를 끓여 한 모금씩 음미하며 녹색 천에 붉은 꽃을 수놓은 듯이 보이는 창가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작은 물건이라도 마음을 담아 놓고 보면 사랑스럽다. 생명력..

그 날을 위한 기도 / 이시은

그 날을 위한 기도 이시은( 시인. 청하문학 고문) 바람은 차갑게 느껴져도 햇살은 완연히 겨울과는 달라졌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던 마음은 더욱 웅크려지고 얼어붙는다. 오미크론이 기세를 더해 확진자가 매일 이십만 명이 넘는 날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날마다 포격이 더해지고 있다. 침략자는 궁지에 몰리자 핵으로 위협을 하고, 동해안을 비롯한 각처에서 산불이 일어 온 산천을 벌건 화마가 휩쓸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시로 핸드폰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강풍에 미친 듯이 번져가는 불길을 잡고자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과 쉴새 없이 물을 길어 나르는 헬리콥터들이 분주히 오가나,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로 물을 뿌려야 하는 지점을 파악하기조 차 어렵다. 가스 저장 창고가 위험 범주에 들어가는 상황이고..

무거운 짐 지고 사셨던 아버지 / 이시은

무거운 짐 지고 사셨던 아버지 이시은 (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친정아버지께서는 1922년에 팔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2002년 겨울 79세로 세상을 뜨셨다. 군 내에 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가 두 세 군데밖에 없던 시절이라 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아버지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 산 고개를 넘어 먼 길을 오가야 했다. 입학을 시켜놓고 할아버지께서 혼자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버지를 산 고개 위에까지 데리고 가서 지켜보시다가, 아버지가 학교 교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오셨다고 한다. 학생이 몇 안 되던 때였으니 산길에는 인적이 드물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하셨다. 교직에 계시면서 어려운 살림으로 초등학교 입학을 못 하는 어린이들을 학교에 다녀서 배울 수 있도록 ..

보물상자 속의 유년의 집/ 이시은

보물 상자 속의 유년의 집 이시은(시인. 수필가) 내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배경을 생각해 보면 나의 성장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산촌에서 유년을 보낸 내게는 자연은 친구였다. 대가족 속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갖가지 놀이를 하며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았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그 즐거움 속에는 글을 알고부터 손에 닿는 대로 읽어대던 책과의 만남도 자리하고 있다. 내가 자란 고향 집은 밀양 시내에서 40여 리 떨어진 곳이며, 밀양에서 부산. 마산으로 향하는 국도까지 버스를 타러 가려면 5리를 넘게 걸어가야 하는 산촌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다. 방학이면 서울에서 사촌들이 내려와 개학을 앞두고 ..

6.25 전쟁을 생각하며 / 이시은

6.25 전쟁을 생각하며                                                                  이시은 (시인) 6.25 전쟁 71주 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 전쟁에 참여했다 전사한 국군의 유해를 미국에서 비행기로 모셔와 군인들이 안고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전사하여 산하에 묻혔다가, 뒤늦게 발굴되어 70여 년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3년 1개월 동안의 참담했던 전쟁을 생각하면서 유엔군과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하다. 김일성의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두 달 만에 낙동강 일부를 제외한 남한의 90% 국토가 북한군에 침범당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울 때였다. 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이시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이시은 (시인. 수필가) 미국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Christopher Plummer)가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감명 깊게 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감명은 여전하다. 눈 덮인 알프스의 전경이 바라보이는 초원에서 마리아가 부르는 노래는 감미롭고 사랑스럽다. 1965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으로 마리아 역에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와 폰 대령 역에 크리스토퍼 플러머(Christopher Plummer)가 주역을 맡은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명작이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를 피해 ..

빈 신년음악회가 불러온 추억/ 이시은

빈 신년음악회가 불러온 추억 이시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지휘자의 손끝이 관중들을 향하고 관중들이 일사불겹게 손뼉을 친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광경이다. 오래전부터 즐겨 듣던 곡이다. 경쾌하고 씩씩하여 덩달아 신명이 나고, 발맞추어 걸어 나아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오스트리아 국민이 사랑하는‘라데츠키 행진곡’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하여 1948년 8월 31일에 초연을 한 행진곡이다. 이 곡은 이탈리아 북부가 오스트리아 치하에서 분리 독립투쟁을 할 때, 오스트리아 장군 라데츠키가 쿠스토자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붙여 라데츠키 장군에게 헌정한 곡이다. 왕이 참석한 초연 장에서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장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