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신년음악회가 불러온 추억
이시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지휘자의 손끝이 관중들을 향하고 관중들이 일사불겹게 손뼉을 친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광경이다. 오래전부터 즐겨 듣던 곡이다. 경쾌하고 씩씩하여 덩달아 신명이 나고, 발맞추어 걸어 나아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오스트리아 국민이 사랑하는‘라데츠키 행진곡’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하여 1948년 8월 31일에 초연을 한 행진곡이다. 이 곡은 이탈리아 북부가 오스트리아 치하에서 분리 독립투쟁을 할 때, 오스트리아 장군 라데츠키가 쿠스토자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붙여 라데츠키 장군에게 헌정한 곡이다. 왕이 참석한 초연 장에서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장교들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여, 3번이나 앙코르 연주를 하였다. 그때 장교들이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친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이 곡을 지휘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지휘자는 관중을 향해 지휘를 하고, 관중들은 흥겹게 손뼉을 치며 연주자와 호흡을 함께한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피날레 앙코르 곡으로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해오고 있다.
일제히 손뼉 치며 흥겨워하는 광경은, 여러 해 전 나의 고향인 밀양강 강변 야외무대를 추억하게 한다. ‘예술아 놀자’라는 제목으로 열린 밀양 예술제 30주년 전야제 행사장이다.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은, 내가 작시한 ‘밀양의 노래’가 개막식 오프닝 곡으로 선정되어 밀양 예총의 초청을 받아서였다. 연합하여 만든 300여 명의 합창단으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이 노래는 ‘밀양 아리랑 대축제’를 비롯하여 행사가 많은 고향을 위해, 밀양여고 후배인 김광자 작곡가와 함께 만들어 밀양에 헌정한 합창곡이다. 밀양방송 개국기념행사에서 초연되었다. 문화 행사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밀양아리랑 대축제’ 전야제에서도 연합합창단의 노래로 불리기도 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야외무대 앞 강 둔치와 강둑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성악가가 부르는 동안 누구의 지휘도 없었건만, 관중들은 함께 호흡하며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쳤다. 가슴 뭉클한 광경이었다. 그 열기는 빈 신년음악회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사회를 보던 이상벽 아나운서는 밀양시민들의 높은 수준을 보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던 기억이 새롭다.
영남루 야경이 강물을 수놓는 아름다운 전경을 배경 삼아,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그토록 많은 고향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자리하는 것이 행복하였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관중들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밀양시에서 초청 강연이 있어 갔을 때, ‘고향을 위하여 각자의 역량만큼 무엇인가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고향의 발전을 위하는 것이며 고향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밀양의 노래’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여 헌정한 것이었다. 고맙게도 이 노래가 밀양에서 여러 행사 무대에 올려져 기쁘기 그지없다.
고향으로 향할 때는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 영남루가 보이면 마치 영남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고, 밀양강이 가슴을 펴놓고 반기는 듯하다. 세월은 타향의 길목을 누비는 동안 많이도 흘렀건만, 고향을 찾는 마음은 아직 풋풋한 젊음이 샘솟는 듯하다. 누구나 고향을 사랑하듯이, 내게도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같이 푸근한 곳이다.
빈 필하모닉의 연주에 맞추어 관중들이 즐겁게 손뼉 치는 모습과 밀양 강변 야외무대를 향해 박수를 보내던 관중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감동으로 다가온다. ‘남천강 굽이쳐 흐르고 종남산에 아침 해 돋으면 솔바람도 잠 깨어 일어나는 내 고향 밀양 …….’밀양의 노래 서두를 흥얼거려 본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말이든 건네고 싶고,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고 싶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생각나는 고향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구라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노래를 이어간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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