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 시 해설및 평설

페미니즘 그 소격疏隔의 미학

청담 이시은 2006. 10. 1. 20:44

  페미니즘 그 소격疏隔의 미학
  ― 이시은 제1시집 『내가 강물로 누울 때』의 세계
  이수화李禿和(시인)
 
  한 시인의 작품을 한권의 시집에 묶어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면 거기엔 그만한 내적內的 동인動因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시인은 새로운 모색摸索(Groping)의 계기를 삼기 위해서, 또는 텍스트의 정리정돈
때문에, 아니면 세속적인 욕망 충족이 그러한 동기가 되는 수도 있을 터이다. 이 중에 아마도  양질良質
의 시인이라면 그 내적 동인이 포에지나 텍스트의 새로운 모색에 있을 터인데 이시은李時殷 시인의 경
우 그 내적 동인을 찾아서 밝혀내는 이 글이야말로 그의 시세계를  점검하는 일이 될터이고, 따라서 이
글의 소임인 시집 해설의 책무도 다하게 될 터이다.


  이시은의 첫 번째 시집 『내가 강물로 누울 때』(혜화당 간행刊行)는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로 독자
의 주목에 값하는 시집이 아닌가 한다. 특히 시집 메타 텍스트로 내세워진 <내가 강물로 누울 때>의 총
체적 절륜성絶倫性은 충분히 아름다운 미학을 담지하고 있다.
 
  내가 산으로 서 있을 때
  그대 강물로 눕더니
 
  바람 한줄기 서늘히
  몸 적신 후
  내가 강물로 누울 때
  그대는 산으로 서 있네
  ― 「내가 강물로 누울 때』 전문
 
  단3연의 총6행으로 구성된 위의 작품은 단순한 언술내용인 듯하지만은 정반대의 호방한 포에지의 울
림을 준다. 첫 스탠자가 모든 존재인식의 근원인 자가에 부동의 무게가 주어져 강물로 흘러가는 대상對
象과의 애별리고愛別離苦 정서情緖를 강조하는데 반해 마지막 연은 자아에 흘러감의 무게가 주어져 만
남과 헤어짐의 고통苦痛과 더불어 존재론적인 대상과의 거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산으로 서 있던  '내
가' 강물로 흐르는 '나'로 변화한 것도 저러한 존재론적 거리무화距離無化에의 의지意志 표출이다.  특히
첫연聯과 종연終聯 사이에 완충연인 "바람 한줄기  서늘히/몸 적신 후"란 은유연隱喩聯이 환기하는 시
간의 경과는 나와 그대 즉 존재와 대상간의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근원적인 격리隔離(Being seprated)
의 외로움을 강조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시은의 포에지는 그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이라는 존재론
적 운명관에 머물지 않고 존재와 대상 사이에 또한 존재하는 이른바 '빔'(虛·間)의 그 '격간隔間'을  긍
정하는 데에   있다. 거칠게   말해 이시은의  포에지가  아름답다  함의  까닭은  실로  저러한 소격
(Getragement)의 미학에 있는 것이다. 좀더 부연하건대, 위 텍스트  내 '산'과 '강물'은 '양陽'과 '음陰'의
존재여서 그 '남'과 '여' 사이에는 영속적인 '빔'(虛·間)이, 즉  '소격'이 있는데 이 소격이야말로 생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 생성이 바로  음양교합陰陽交合의 지향성(인텐셔널리티)인 사랑의 의지이다.  이
생성력은 죽지 않는다. 내가 강물로 누우면 산으로  서고, 산으로 내가 서면 그대는 강물로 흐를지언정
영속하는 것이다. 곡신불사谷神不死이다. 곡신谷神(산과  산사이의 계곡 속신, 그것은  여성이라 노자는
갈파했다)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는 이시은의  텍스트들은  위의  시를 비롯하여   그러므로 페미니즘
(Feminism)이 그 포에지이다. 이시은 시의 페미니즘, 그 소격의 미학은 그래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으리
라는 것이 필자가 그의 시 총체를 보는 시각이다. 시 「민들레」가 그러한 페미니즘의 절륜성을 담지함
에 있어 과부족한지를 검증해 본다.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나른히 내리는 빛
  베고 누워
 
  까마득한 날
  바람에 실려 날아 내리던
  잊혀진 기억 더듬으며
 
  꽃잎 진 머리
  하얀 솜 너울 쓰고
 
  다져온 약속인 양
  야문 모성의 인내로
  향방 없이 나는 홀씨 하나
  봄을 꿈꾼다
  ― 「민들레」 전문
 
  "다져온 약속인 양/야문 모성의 인내"를 민들레꽃이라는 풍매화風媒花에게서 포착해 '모성'이라는 것
이 이제는 일상에서는 그다지 절실해 뵈지않는 생의 이면을 들추어 보이는 위 작품도 여성주의(페미니
즘)를 기저로 하는 이시은 시의 포에지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이시은은 기승전결의 단정한 연구분 구성 속에  민들레꽃의 생득生得으로부터 종속번식의 사명을 다
하는 일회적 삶의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조견한다. 이러한 시인의  온건한 태도는 일견 현실길항성이나
현실과의 불화가 없는 듯해 자칫  그 포에지의 치열성이 의문시될  수도 있겠으나 최종련 서브 코다인
"야문 모성의 인내"가 내뿜는 언표를 독자는 간과할 수 없을 터이다. 그리고 마지막 2행의 여운도 의미
심장하다. 단순한 표현인 듯하지만은 무정처無定處의 생명 하나가 꿈꾸는 봄의 이미져리는 얼마나 절박
한 생이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시은의  「민들레」는 강고한 여성주의적 삶의  아름다운 패러다임 그
속내일 터이다. 이처럼 이시은에게  있어 "가마득한 날/바람에  실려 날아 내리던/잊혀진  기억 더듬으
며"(「민들레」 2연) 모색해온 페미니즘의 존재론적 오의가  그의 포에제의 소격적 미학으로 꽃피어날
수 있기까지에는 결국 '황진이'나 '춘향이'의 영혼과 한의 정서 세계에 시인 이시은이 몸소 투신하여  그
페미니스틱한 한과 영혼의 무궁성을 체득했다는 사실이다. 다음 두 작품은  그 사정을 극맹하게 드러내
보이는 텍스트들이겠다.
 
  ①춘향이/눈물로 남았나//황진이/한으로 남았나//소낙비 모진 매에/응혈 맺혀//검은 눈물/사산된 영
혼으로 남았나//새 생명 움추린/검은 점들아
  ②그대/송도 삼절/황진이//어찌/다시 살아/날 울리는가//그대/까마득한 날/남긴 흔적//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다시 보는 밤//찌르르/심장에 꽂히는 못/그대가 뽑지 못한 한이런가
 
  ①은 「씨앗」, ②는 「황진이」 전문인데 시인 이시은의 페미니즘 포에지는  이른바 오늘날 서구 환
경주의 족색시나 녹색문학가들이 현대문맹과 인간중심주의가 파괴하는 것은 자연환경 이상의  여성파괴
에 있음에 착목하여 환경보호차원의 문학에 페미니즘까지도 포괄해야한다는 '에코 페미니즘' 문학정신에
닿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시의 에코 페미니즘 포에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춘향의 눈물과 황
진이의 한에 대한 고기토를 통해 페미니즘의 당위성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황진이·춘향이처럼 '모진
매에 응혈맺혀', '사산된 영혼으로' 남은 그 '새 생명'조차 '움츠린 검은' 씨앗을 발견하고 있는 시인의 에
코 페미니즘에 독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②의 「황진이」에서는 더욱  이 점이 인간화되어
리얼리티를 얻는 바, 까마득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현실화되고 있는 황진이의 한(봉건적 반페미니
즘인 남성우월주의)을 드러내는 적절한 이미져리군群의 구사를 볼 수 있다.  황진이, 울음, 흔적, 못, 한
등이 반페미니즘을 드러내는데 적절한 이미지라면 이들  이미져리를 인간화시키는 공간적 모티프가 각
각 '송도'와 '예술의 전당'으로 구체화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와같은 이시은 시의 에코 페미니즘
포에지는 인륜과 시원회기始原回歸 정서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그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시 「고향·1」에는, "해와 달과  별을 가리키시며//……오늘, 내 뜰에도/달은  밝은데…"라는
자연환경의 피폐성 인륜의 소격성과 무관치 않음을 비교적 온건한 어조에  실어 고발하기도 한다. 나아
가서는, "낡은 탱크의 포구만/묵묵히 서 있는/통일 전망대"(「통일 전망대」부분)라든가, "인터넷 세상/
할아버지가 모르는 세상"(「컴퓨터와 대화」부분)이라는 언표 등은 이시은 시의 에코 페미니즘 시세계
가 포괄적인 경계임을 드러내 보이는 예이다. 이제 그러한 포에지의  총체성과 미학이 은연하게 융합됨
으로써 이시은 시의 한 정점頂点을 시현하고 있는 텍스트의 세목에 주목하므로써 <이시은 시의 페미니
즘 그 소격의 미학>이란 명제하에 살펴온 그의 첫시집 『내가 강물로 누울 때』의 척박한 해설문에  종
지부를 표해야겠다.
 
  용서하소서
  살아 있음이 두렵습니다
 
  젊은 삶
  세상 떠났다는 소식에
  무상함이 일고
 
  일상에 무사함 주심을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감사하기 보다
  불평 많은 나를 용서하소서
 
  이 작은 행복도
  못 이루는 자에겐 기쁨이리니
  겸손을 못 배운 나를 용서하소서
  ― 「용서하소서」 전문
 
  이시은의 시세계를 그동안(문단데뷔 이후 이번 첫시집 상재 때까지 또는 그의 습작기를 포함한 시작
활동 10년이내) 지탱해온 지배적인 정서는  존재론적 애별리고와 소격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표제작
「내가 강물로 누울 때」에 강고하게 내장된 이  격간隔間의 정서는 이번에 상재되는 첫시집에 수록되
는 77편(제1부 <세월의 뒤안>에 28펴, 제2부 <무채색 그림>에 28펴, 제3부 <꽃씨>에 21편)에서 각각  시
인의 의식이 처한 상황과 경계인식의 변화에 따라 변주된다.


  「내가 강물로 누울 때」와 「민들레」등이 애별리고의 정서를 대표하는 텍스트군이라면, 「황진이」
와 「씨앗」등 일련의 텍스트군은 에코 페미니즘 정서가 두드러진 작품들이라 하겠다.
  황진이나 춘향의 시대에서 단 한발검음도 나아진 것같지 않은 여성의 피폐상을 자연피폐상과 동일선
상에서 보호하고자하는 에코 페미니즘의 절윤성絶倫性을 담지한 작품 「황진이」와 「씨앗」의  미학을
성취한 이시은의 세계관은 결국 이제부터 그 전향적前向的 조짐을 획득하리라  본다. 그 실천적 텍스트
가 바로 위의 예시 「용서하소서」이다. 이는 분명 변화된 세계관의 태도로 드러나 있다. '용서'의  세계
관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살아 있음'에 대한  경외심은 삶의 경건주의에 다름아
니다. 종교적 독트린의 화석화된 경견주의가 아닌 세속적 삶의 초월의지로서의 경건주의 세계관은 인간
적이고 역동적인 시적 공간의 창조를 가능케 한다. 이런 점에서 시 「용서하소서」는 그 형식과 내용이
평이한 반면 현실과 존재에 대한 거듭된 성찰을  경주하고 마침내 그의 이제까지의 (이 첫시집 상재까
지의) 페미니즘 그 소격의 미학을 거쳐  새로운 지향성(Intentionality)을 엿보게 하는 이른바  평범平凡
속의 비범적非凡的 작품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에코 페미니즘이야말로 여성자신의 만유를 용서하는 거
듭된 타자他者껴안음의 세계에 다다르려는 시적 대독代讀(Redemption)지향의 포에지  소산이라 여겨져
재삼 이시은 시의 새로운 전망展望과 이 첫시집의 상재에 아낌없는 박수를 불금不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