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시세계
윤병로(문학평론가, 성대 명예교수)
이시은시인은 시단에 등단 후 첫시집 <내가 강물로 누울 때>를 비롯, <풀꽃의 말>, <눈
뜨며 다시 안겨드는 세상>등 3권을 상재해서 특기할 탄탄한 시력(詩歷)을 쌓고 있다.
이시은의 시세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지식보다는 감성의 표현이 능한 이 시인의 시작법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마치 수를 놓듯 그려내고 있다"는 성기조의 평설로 대변해도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전적(古典的) 기법'을 훌륭히 발현시킨 시인으로서 주목을 받아 왔음을 일깨우게 한다.
이같은 기존 평판을 염두에 두면서 이시은의 신작시 5편을 두루 살펴 보기로 한다. 시<화답>을 비롯한 <인꽃>. <길목>. <해오라기>. <천불등>등. 다양한 시제를 담아낸 시편들을 통해서 그의 시세계의 안팎을 투시할 것이다.
먼저 시<화답>을 접하면 자연만상의 변화를 예리하게 관조하면서 시인의 절절한 고독을 자연의 순리로 자위하는 애조어린 목소리를 정감있게 들려준다.
산다는 것이
봄날에 꽃샘바람 질탕하게 놀다가는
그것 닮은 것이더라
어쩔래 어쩔래 아무리 물어봐도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 닳은 외로움을
한평생 키우고 살
수 밖에 없다더라
-<화답>의 일부
우리의 삶을 골똘히 되돌아 본다, 결국 계절의 변화처럼 거역할 수 없는 천리로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애조의 음향이 찡한 울림으로 파급된다. "계절 닮은 외로움을" 糖勺낮?-체념어린 어조로 읊어서 우리 가슴을 크게 흔들게 한다.
이같이 비감에 젖은 목소리로 고독을 읊었던 시인의 비가(悲歌)는 다시 새로운 변주를 시도한다. 시<인꽃>에서는 숙연한 음조로 "인내를 먹고 피는 인꽃들"을 찬미한다. 동시에 우리 인생의 고행(苦行)을 은유적으로 재현해서 그 시적 효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인꽃>의 첫대목을 음미해 본다.
휘파람 불며 몰아치는 바람에
속살 트는 아픔 키워 꽃이 피었다
아픔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비틀거리지 않고 서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 <인꽃>의
일부
모진 한파를 힘겹게 이겨내어 '인꽃'이 마침내 한 송이 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수많은 방황 끝에 어렵사리 자립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담아 내어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한다.
다음 시<길목>에서 도시의 비정한 풍경이 몹시 역동적으로 부각된다. 바쁜 생업에 쫒기듯 살아가는 거리의 긴 인파, 그들은 가로의 나무도 빌딩의 숲에도 내일을 전혀 예견치 못한채 허탈한 심회로 자신이 걸어온 지난 세월의 궤적을 되돌아 본다는 비감이 압도한다.
바람개비 날개 퍼덕이는
아침 햇살에 눈 뜨고
익은 감알 머리 숙인 석양빛에 하루를
접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내일의 일출을 기다린다
고동소리 음표를 그리며 다가서면
길은 안개속에 묻었던 얼굴을
조금씩
내민다
-<길목>의 일부
이렇듯 도시의 길목 풍광이 한 폭의 회화처럼 역동적으로 그려저 시각적 효율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이 시편에서 이시은 시인의 시적 기교가 기존의 수준에서 한 층위 변모되고 진전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리낸 증좌가 될 것이다.
이시인의 시적 변용(變容)의 시도는 시 <해오라기>에서 그 실상을 감지 할 수 있다. 현대인의 불안한 일상을 상징으로 시화(詩化) 시키면서 시인의 겸허한 자성의 목소리를 함축시켜 크게 돋보인다.
내가 서야 할 땅은 어디일까
서 있으면 앉아야 될 것 같고
앉아있으면 서야 할 것 같다
내 본디
무논에 서있는 해오라기
한 발 딛고 서 있어야 할 운명이었나
보다
-<해오라기>의 일부
이 시편에서 '무논에 서 있는 해오라기'의 고고한 자태를 떠올리면 찬미하는 시구에서 의인화(擬人化)시킨데 주목하게 된다. 시인은 '해오라기'의 운명을 거슬리고 세파 속에 휘청거리는 자신을 되 묻는다. 동시에 크게 자성하는 숙연한 목소리를 터트리고 있다. 한 시인의 감성적 참회이기 보다도 오늘의 도시인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아 낸 감동의 시편으로 받아진다.
이시인의 시세계는 여러모로 다양하게 변모되고 있거니와 시<천불등>에서 다시 섬세한 시어로 감동적 기행시를 읊고 있다.
눈 아려 감기는 산야
아흐
가슴에 붙은 단풍 불은
어디로 내 뿜어야 하나
천개의 불상
실핏줄에 고인 비밀조차
안다는 듯
굽어보는
천불동
-<천불동>의 일부
붉게 타오르는 단풍에 휩싸인 천불동을 찬양하는 정취 넘치는 시편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찬탄의 정회를 유감 없이 쏟아
내고 있다. 물아(物我)일체의 경지를 서정적 시상으로 흥겹게 읊고 있다고 하겠다.
이시은의 신작 시편들을 산책하면서 그의
시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크게 확대되고 있음과 시적 발상법이 한결 정제되었음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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