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6.25 전쟁을 생각하며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22. 3. 30. 21:06

6.25 전쟁을 생각하며

 

                                                                 이시은 (시인)

 

6.25 전쟁 71주 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 전쟁에 참여했다 전사한 국군의 유해를 미국에서 비행기로 모셔와 군인들이 안고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전사하여 산하에 묻혔다가, 뒤늦게 발굴되어 70여 년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31개월 동안의 참담했던 전쟁을 생각하면서 유엔군과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하다.

 김일성의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두 달 만에 낙동강 일부를 제외한 남한의 90% 국토가 북한군에 침범당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울 때였다.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로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서울을 탈환하고 경인 도로와 경춘 도로를 장악하여 낙동강 전선에 집중된 적의 보급로를 끊고 퇴로를 차단하여 섬멸한다는 작전이다.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적의 손에 들어간 팔미도 등대를 밝혀 영흥도와 영종도 사이를 비추어 함정들이 들어오는 길을 터야만 했다. 조수의 차이가 심하며 수로가 좁고 암초가 많아 어려운 여건인 인천으로 상륙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1950914일 오후 7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히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미군 3명과 한국군 3명이 작전을 수행하여 북한군 2개 분대를 섬멸하고 등대에 불을 밝혀 195091502시에 7만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함정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여 성공으로 이끌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없는 6.25를 생각 할 수 있을까. 부산 함락을 눈앞에 둔 상황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는 적진에서 인천상륙작전의 길을 터 나라를 구한 여섯 용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서울을 탈환하고 적의 병참선과 퇴로를 끊었으며 인천항만과 서울에 교두보를 마련하여 북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서울 탈환은 풍전등화 같은 나날을 보내던 아군과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힘을 얻은 연합군은 낙동강 전선을 공략하여 휴전선 탈환까지 15일이 걸렸다고 한다.

 압록강까지 전진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해야만 했다. 맥아더 장군은 중공 본토를 공략하여 공산 세력을 무너뜨려야만 훗날의 골칫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세계 3차 대전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을 해임 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휴전회담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다.

 “승리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말과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장군의 말에 맥아더 원수의 정신이 담겨있다. 장군은 퇴임사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긴 세계대전에서 눈부신 전공을 새우고도 해임을 당한 세계사의 인물이다. 한 시대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인물들의 영향은 역사를 바꾸어 놓는다. 생각이 다른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했던 트루먼 대통령의 정책이 아직도 휴전이라는 대치 국면을 만들어 놓았다면 과언일까.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부각 되어 오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에서 비롯된 참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소련을 등에 업은 북한의 적화통일이 목표인 공산 국가들의 팽창을 막아내는 지대한 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맥아더 장군의 해임은 애석하기 짝이 없다.

 세계 전쟁사에 남은 인천상륙작전을 많은 반대에도 실행하여 대한민국을 구한 맥아더 장군이다. 미국을 방문한 김종필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하루빨리 통일되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이 통일될 때까지 죽을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수많은 군사의 목숨을 걸고 어려운 작전을 해야 했던 장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말이다.

 미국 역사상에는 네 명의 원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공을 세웠던 탁월한 맥아더 원수를 만날 수 있었음은 불행한 가운데서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장군이 해임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어 아쉬움이 더해온다.

 전후 세대들6.25의 참상을 경험하지 않았다.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그 참담했던 삶들을 얼마나 생각할까. 오늘 우리는 어제의 아버지와 형들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연합군이 목숨으로 지킨 대가로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전이 아닌 휴전을 하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힘을 길러 국방력을 키우는 것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몇 개의 목숨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나뿐인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국방수호와 자유로운 평화는 목숨만큼 귀한 것이기에 젊은 용사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고 또 지키고 있다. 오늘 우리가 편히 살아갈 수 있음은 얼마나 많은 젊음이 산화한 대가인가. 유엔묘지와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았을 때 작은 비석으로 남아 있는 용사들과 비석조차 없는 무명용사들의 이름 앞에서 가슴 저려오던 기억을 떠올린다.

 대한민국은 준 세계대전의 전쟁으로 지켜낸 나라이다. 나라를 위해 국토를 피로 물들이며 지켜낸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며, 국군과 평화를 위해 참여한 22개국 연합군의 노고에 머리를 숙인다. 살아 있다면 구순의 나이를 바라볼 선배들의 젊디젊은 유해를 모셔 안은 또래의 군인들을 바라보며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한국문학신문<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