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과 楊貴妃양귀비
이시은(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흐드러지게 양귀비꽃이 피었던 자리에 코스모스가 무성히 지라 꽃을 피우고 있다. 오뉴월 선홍빛 화려한 꽃물결로 시선을 끌던 자리에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다시 코스모스 꽃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양귀비는 마약 초로 재배가 금지되어 있어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수년 전 제주도에 들러 가파도에 갔을 때다. 보리를 베어낸 길가에 유달리 아름답게 느껴지던 붉은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어디서 본 듯 한데 꽃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궁금하여 일행에게 물어보고서야 그 꽃이 관상용으로 마약 성분이 없는 꽃양귀비인 것을 알았다. 그제야 오래전 중국 낙양에서 양귀비꽃을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약 성분이 있는 양귀비꽃은 꽃잎이 많으며, 꽃잎의 끝이 톱니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도 알았다.
양귀비꽃은 관상용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유달리 곱고 붉은 꽃양귀비(동양 양귀비)가 가장 아름답다. 당 현종의 후궁 양귀비를 닮아서일까. 연분홍과 흰 것도 있지만 붉은 꽃양귀비의 색깔이 단연 매혹적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것은 꽃양귀비가 많다.
꽃밭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양귀비꽃을 보다 오래전 중국 ‘화청지’에 들렸을 때를 떠올렸다. 화청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곳을 본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로양 주정부, 로양대학, 로양문인협회의 초청을 받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일행으로 로양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안에서 며칠 관광을 할 때였다. 당 현종이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던 곳이라 관심을 끌었다.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리만치 빼어난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 최고의 미인으로 천 년이 넘게 회자 되는 인물이 아닌가. 궁금증이 더하는 눈앞에 양귀비의 풍만한 나신의 조각상이 마주했다. 지금의 미녀 상의 날씬한 몸매가 아니라 풍만한 몸과 얼굴이었다. 먹을 것이 귀한 당시에는 살짐이 좋아 통통한 것이 부의 상징이고 미인으로 꼽혔다고 한다.
화청지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양귀비가 목욕하던 해당탕과 현종이 목욕하던 연화탕이었다. 양귀비가 목욕하고 바람에 머리를 말렸다는 2층 높이의 누각 飛霞閣비하각을 보면서 왕이 얼마나 양귀비를 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암내가 심해 온천수에 양의 젖을 풀어 목욕을 했으며, 항상 향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시종들이 암내로 코를 막을 정도였으나 현종은 심한 축농증으로 암내를 맡을 수 없었다니, 역사에 남을 운명을 타고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은 양귀비에게 혼이 빠져 정사는 소홀히 하고, 양귀비의 사치와 권세가 극에 다다랐다. 양귀비의 옷 만드는 사람이 700명에 이르렀고, 南方남방 특산인 荔枝여지라는 과일을 좋아해 지방관리가 수천 리 길을 날마다 말에 실어 신선한 것을 공급했다니, 누렸던 영화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뿐만 아니라, 세 자매까지 韓國한국, 虢國괵국, 秦國夫人 진국부인에 봉해졌으며, 친척들마저 격에 맞지 않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왕족과 혼인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후궁에 빼어난 미녀 삼천이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3천 명분 총애가 한 사람에게 머무르니)” “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렬사 (자매와 형제 모두가 땅을 갖게되니)/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아릿다운 광채가 가문에 나는구나)/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비로소 천하의 부모들이)/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겼네)”라고 읊었다. 양귀비의 호사가 白居易백거이의 ‘長恨歌장한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꽃이 피면 지듯이 그토록 하늘을 찌를듯한 영화를 누리던 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관대작에 올라 권세를 누리던 6촌 오빠 양국충의 양귀비가 총애하던 안녹산을 향한 권력 암투는 ‘안사의 난’을 만들었다. 난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양씨 일가에 반기를 든 군사들이 양국충을 죽이고, 죽음을 강요당한 양귀비는 목을 매어 죽는 것을 현종은 막지 못하고 비극적인 사랑의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무슨 일이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했다. 절세미인으로 가무에 능해 왕을 현혹하여 나라를 망친 대가는 혹독했고, 그들의 사랑도 오래가지 못했다. 귀비 양 씨의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으로 황후 자리를 비워두어 사실상 황후의 자리를 누렸던 것은 그만큼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양귀비꽃의 이름은 양귀비만큼 아름답다고 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마약 초인 이 꽃의 이름에서 젊은 날 훌륭한 치적을 남긴 왕이었지만, 마약에 취해 인생을 망치듯, 양귀비에게 넋이 나가 나라를 망친 현종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마약 성분까지 양귀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파도 돌담 아래 아름답게 피어 있던 양귀비꽃은 양귀비의 미색을 본듯하고, 흐드러지게 꽃불을 피우던 양귀비 꽃밭은 그녀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영화를 보는듯했다. 그러나 그런 영화도 오래가지 못하고, 서른여덟 젊은 나이에 목을 매어 죽어야 했던 운명처럼 시들어 베어지고, 코스모스가 무성히 자리를 잡았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순환의 고리에 엮여 이어지는 흐름을 한세대를 풍미한 역사와 식물의 생식 고리를 보며 다시 생각한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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