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모정이 흐르는 강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3. 8. 29. 17:50

 


 모정이 흐르는 강


 

                                       이시은


 

 정형외과 병동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벌써 달 반을 넘겼다.


"성준이 어머니죠? 병원입니다." 교통사고라는  말에 튕겨지듯  문을  나섰다.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찰과상과 타박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의식을 잃은 아이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아이의 입에서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만 새어 나왔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서늘한 응급실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다리에는 허벅지까지 붕대가 감기고, 눈 등에 찢어진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믿지 못할 현실 앞에서 어미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신음하는 아이 옆을 서성이고 있을뿐이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냉정함을 찾을 수밖엔 별 도리가 없었다. 


 아이는 편도 2차선 도로 길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사고 후 경찰서에서  조서를 끝내고 나타난 가해자는,  아들아이가 골목에서 나와 무단 횡단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는 골목이  없었다. 아이가 전방에서 계속 직진하고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한 운전자의 부주의였다.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가해 차량의 반사적인  회전 속도에 밀려 아이는 중앙선을 넘어서 떨어진 것이  확실했다. 당시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페인트 자국을 외면하며, 나는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몇 번이고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다리 골절 14주 진단이 나왔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밤을 새워야만 했다. 십여 일 동안  다리에 붓기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밤낮으로 얼음주머니를 갈아 채웠다. 아이는 미동의 움직임에도 고통을 호소해 왔다. 


 사고 후 일주일 만에야  겨우 수술을 했다. 전날  밤부터 금식을 시킨  아이가 침대에실려 들어가고, 남편과 나는 수술실 밖에서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무사하게 성공적인 수술이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도 느린 줄은 몰랐다. 보이지 않는 수술실 안으로 귀를 바싹 들이대고 있었다. 물건을 뚫을 때나  사용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드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다리에 쇠못을 박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있는 것 같았다. 뼈에 못을 박는 망치소리가 금속음을 내며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모아쥔 손에 물기가 흥건히 배어  났다. 마취를 하고 단순한  물체로 누워있을 아이의 영혼 속으로 어미의 혼이 아픔을 견디며 스며들고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실 문이 열렸다. 핏기가 가신 아이가 수술실 밖으로 실려 나왔다. 신음  소리를 내는 아이는 차마 바라 볼 수  없을 만큼 온 몸을 떨었다.  눈을 감은 채 "엄마……"하고  내 뱉는 첫 마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엄마다"하고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아이의 의식이 뚜렷해 질수록 팔다리에  힘이 쑥 빠져 나갔다. 남편이  병상을 지키는 것을 보며, 나는 쓰러지듯 보조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간의 긴장이 풀려 내렸다. 더 이상 냉정함을 유지하며 서 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식사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굶고 있는 내게 음식을 권해 왔다. 밥 한 술을 입에 넣는 순간 복받치는 흐느낌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있는 힘을 다해 아픔을 견디며 밥을 굶고 있는 아이를 두고, 단 한 술의 밥도 넘길 수가 없었다. 


 사고가 일어났던 것도 달 반이  지났다. 보험에 가입했다고 힘주어 말하던  고급 승용차의 가해자는 전화 한 통도 없었다.  보험에 가입하여 치료비만을 부담하는 것이 인륜보다 앞서는 세태일까. 만약 그가  교통법규 팔 개 조항에  걸렸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이를 무단 횡단자로 몰아가는 그 사람.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약삭 빠른 사람들의 처세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슬퍼져 왔다. 


 정형외과 병동에는 교통사고 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차량들이 어제의  편리함과는 달리 흉한 무기처럼 느껴져 왔다. 무사히 치료되기를 기다리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옆 병실 아저씨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휠체어를 타고 다가 왔다. 그는 삼 년 전 화물차를 몰다  잠시 정지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온 레미콘 차에 부딪쳐 양쪽 다리를 쓸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복도를 오가며 운동을 하는 그의 모습에는, 그토록 오랜  병상의 그늘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웃음 띤 얼굴이었다. 두 다리를 잃고도 웃을 수 있는 그의  앞에서 초췌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을 추스리고 있었다. 억울하고 분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의 얼굴에는 모진 고난 끝에 피어난 들국화처럼 은은한 향기가 젖어 있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가. 후유증이 없는 부위이니 걱정 말라는 주치의의 말에, 조금씩 두려움을 떨칠 수가  있었다. 날마다 복도에서 만나는 그에게 남달리 마음이 쓰이는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 새 그의 모습에서 뼈를 뚫어 쇠 기구를 박고있는 아이의 모습을 위안 받고 있었다. 


 그간 무사히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병실  창 너머 빼곡이 내민 하늘에  스쳐갔다. 사고 환자를 실어 나르는 숨 가쁜 앰뷸런스  경적음을 들으며, 또 하나의 일상이라고만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남에게 있을 수 있는 일들은  내게도 결코 예외가 아님을 절감케 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의  쾌유를 빌며, 또 하루가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 속에 소리 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안고 있는 모정의 강은 내일의 밝은 햇살을 꿈꾸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