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창 넓은 집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3. 8. 29. 17:24

 

 

창 넓은 집


 

                            이시은


 

어릴 적 툇마루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숲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곤 했다.


 나이팅게일처럼 백의의 천사가 되어 병든 자들을 간호해 주고도 싶었고, 법관이  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없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또 한 때는 바른말 잘하는 기자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가 되고 싶었다. 그런 여러 가지 꿈 중에 문인이 되어 글을 쓰며, 창이 넓고 정원수가 많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꿈 많고 가슴 설레는 처녀  시절도 지나가 버린 지금,  나는 이렇다 할 아무  것도 내 놓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위안 삼아 자신을 달랠 때면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 보았던 문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글 쓰기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사해야 할 일은  정원이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살았다는  점이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면  하느님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원망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내게 누릴  수 있는 행복 한두 가지를 준 것을 보면, 꼭 나에게 불공평한 대우는 아니었던 듯 싶다.


 돌아보면 어릴 적 친정집의 위치가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어 아침마다 푸른 왕솔밭 사이로 줄기 빛이 마당으로 쏟아지던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고, 가만히 마루에 누워 비취빛 하늘에 떠 있는 뭉개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며 쉴 새 없이 속살거리는 산들바람과 사운대는 대숲의 소리와 끝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탁 트인 하늘과 푸르른  정원수가 가득한 동그란 창문이 달려있는 집을 짓고 살고 싶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와  요술램프를 열심히 읽던 초등학교 사 오 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한껏 욕심을 부려 자그만  연못이 있는 집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다.


 유년의 꿈이 고뇌와  번민의 터널을 헤쳐가는  여정에서, 지금껏 내가  갖고싶은 삶의 한 부분이며,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다. 도회지 생활에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할 때, 비록 내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향유할 수 있었던 행운을 준 것은 적잖은 행복이다. 


 중학교 입학이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야 했던 이유였다. 산촌에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자랐던 나에게 이 변화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인생의 도전이 시작됨을 의미했다. 통학을 할 수 없는  곳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언니와 함께 자취 생활을 시작하였다. 자취 집에는 자연 그대로의  풍성함과 여유로운 풍경인 고향집과는 달랐지만, 잘 가꾸어진 정원의 모습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떻게 붙여진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일론  꽃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백여 평이  넘는 정원에는 철마다 꽃들이 피어났다. 유독 라일락꽃 향기가 그윽했고 철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곳이었다. 나의 사춘기는 라일락 향기처럼  작은 가슴을 일렁이며 정원의 꽃잎 사이로 번져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몇 차례나 이사를 했다.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학창시절 동안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살아가는 집에 방 한 칸을  얻는 행운이 내게 주어졌음은 감사할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삼문동 고선생님 댁은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다. 책상 옆으로 나 있는 창문 밖 정원에 켜놓은 가로등 불빛으로 이슬이 반짝이는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우리나라 지도 모형의 연못이 있었다. 


 연못가에는 무화과와 수국, 그리고 노오란 금잔화가 소담스럽게 피어났다. 비 오는 밤이면 대추나무 잎새에 묻어나는 빗물이 윤기를  내며 흘러내려 가슴을 적셨고, 나는 밤이 깊도록 노트를 메우곤 했다. 그 무렵이 나의 글 쓰기가 다져져 가던 시절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모습은  베토벤의 월광곡을 생각하게 했고, 푸시킨의 싯구도 읊조리게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모두가 선호하지 않는  일층이다. 그러나 나는  수 년 간 살고 있는 이 아파트를 사랑한다. 방 넷과 거실, 부엌 어디서나  창 밖에는 정원수가 눈길을 붙잡는다. 통 유리로 이어지는 안방과  거실의 넓은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지없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백여 미터나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 내의 조경은, 주민들의 휴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팔각정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유리창 밖에는 이른 봄 목련이 하이얀 얼굴을 드러내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이내  연산홍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다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나뭇잎이 살랑이는 나뭇가지에 어린 조카의 눈망울같은 대추가 빠알갛게 익어 간다.  따로 서재를 두고도 안방 창가에 교자상을 펴놓고 글 쓰기를 하는 것도 눈에 잦아드는  창 밖 풍경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금 나의 창가에는 대추나무가 있고, 가로등이 있고, 고향집 창호문에 수묵화를 그리던 대나무가 있어 비 오는 밤이면 커튼을 연 채 밖을 바라보곤 한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후 더욱  창가 잔디에 맺힌 물빛과, 연못에 돋아나는  작은 파문이 연상되어 오는 것은, 그 때 자취집의 전경과 흡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밤마다 노트를 메우며 키우던 꿈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서던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과, 문학을 향한 열망을 되새김할 수 있어서다. 지금 나는 가슴 속에 끓는 열망으로  글을 쓰고, 쉽게 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정원을 향유할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다.


 삶이 이상의 잣대에서  멀어져 갈 때마다  나는 얼마나 절대자를  원망했던가. 남들이싫어하는 일층 아파트에서 배가되는 기쁨을 누리며, 비록 나의 것이 아닐지라도 포용하고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생각에 따라 불행은 반드시  나쁜 곳으로만 이어져 있지 않음을 배우고 있다. 세상에는 내가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갖지 못하고 누릴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 나는 내 것이 아닌 것으로부터 진정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다.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눈을 크게 뜨고 비록 내 것은 아닐지언정 주위의  여건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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