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빈 자리
글 / 이시은
다시는 오시지 못할 아버지를 배웅하던 그 날의 모습은 가슴에 묻어야 할 것이다.
연세보다 유달리 젊어 보이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고향집에서 노년을 보내시면서도 항상 건강하셨다. 그러던 아버지의 건강은 일년 사이에 너무도 갑작스럽게 악화되셨다. 돌아 가실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걱정을 털고 일어나신 아버지의 건강은 예전처럼 완전히 회복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소처럼 아버지가 좋아하는 화초도 기르시고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심어놓은 잔디도 깎으시며 지내셨다.
찬바람이 창문으로 스며드는 지난 해 십일 월 말 밤 늦은 시간 친정에 다녀온 여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친정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큰오빠와 막내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고 했다. 평소에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으시는 편이라 단순히 몸살 기운이 심한가 보다 하면서도 걱정이 되어 연속 전화를 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난 후 진료결과는 심상치가 않았다. 동생과 서울에서 밀양까지 내려가면 며칠은 있다가 와야 할 것 같아 대충 집안에 준비를 해 두고 나서자니 다음 날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과 연락을 하는 동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안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듯 하여 설마하면서도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수시로 해 보는 전화에도 그렇게 다급함은 느껴지지 않았고, 편찮으신 지가 사흘 정도라 별일 없으시리라 생각했다. 가차에 몸을 싣고 두 시간이 채 못되어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연락을 받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타고 있는 기차 속에서 소리내어 울 수조차 없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둠 속에 뿌리며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바라 볼 뿐이었다.
숱하게 다녀오던 길이건만 아버지 곁에까지 가는 길이 그토록 멀고 먼 줄이야……. 나를 실은 열차가 앞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역행하고 있는 듯했다. 깜깜한 밤 사랑채에는 환히 웃으며 반가워하실 아버지가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천 리 길을 가슴을 치며 달려온 딸의 모습조차 모른 채 아무 말이 없으셨다. 이승과 저승의 길이 이토록 멀고도 가까운 것이던가.
상가를 알리는 조등이 켜지고 하나 둘씩 보내져 온 조화들만 어버지가 애써 키우시던 나무들 사이에 줄줄이 늘어서 있고, 집 안에는 상복을 입은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평소 아버지가 즐겨 앉아 계시던 마당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아버지의 혼백인 듯 불빛 속에 창백한 얼굴을 내밀고 서 있는 조화들은 슬픔을 더 하게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귀를 의심케하는 웃음소리들이 연신 귓전을 울렸다. 문상객들이 호상이라는 미명 아래 주고 받는 이야기 소리가 왁자지껄했으며,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는 잔칫집을 방불케 했다. 아버지가 딴 세상 사람이 되신 것조차 믿어지지 않았지만, 세상은 저렇게 잊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어쩌면 평소 친척들이 모여 웃고 노는 모습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이런 광경을 마지막으로 머무시는 동안 보시고 싶어하는 당신의 뜻이려니 생각하며 위로를 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상여에다 저승 가시는 노잣돈을 걸면서 나는 또 한 번 통곡을 하고 말았다. 나는 여태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용돈을 드릴 때는 언제나 어머니께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쓰임새가 많은 집이다 보니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안의 경제권을 맡아 사셨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는 용돈은 언제나 어머니의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가져가실 수도 없고, 쓰실 수도 없는 돈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상여에다 매달고서 목매어 울 수밖에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일장을 치르는 동안 여러 차례 상석 상이 차려지고 자녀들의 곡소리에도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스무 살에 시집 오셔서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팔십 두 살까지 예순 두 해를 사셨건만,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마주보고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던 어머니셨다. 팔 남매의 장남으로, 우리 칠 남매의 아버지로 무던히도 애 쓰시던 아버지를 따라 묵묵히 살아오신 어머니였다. 우리들이 슬프다고 하지만 어머니만 하였을까.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기까지 그렇게도 담대하시던 어머니였지만, 자녀들이 떠나간 빈 집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커져감을 느끼며 얼마나 외로워 하고 허전해 하실까. 항상 여생을 걱정하시며 아버지가 먼저 가셔야 한다던 어머니는 "이제는 나도 갈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 말씀 속에는 자녀들 모두에게서 후손을 보셨고 아버지가 별세하시므로써 당신의 소명이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살아계실 것만 같았던 부모님은 젊은 날의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건만 이렇게 한 세상을 마감하시는 것인지…….
단순한 감기 몸살로 잠시 병원에 다녀오실 줄 알았던 아버지의 단 한 마디 말씀조차 듣지 못한 어머니는, 아침에 당신 발로 걸어나가 차에 오르셔서 저녁에 싸늘한 몸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야속한 듯 "당신 가실 날을 그렇게도 몰라……."하시며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듯 동구 밖에 나서서 아버지의 유택을 바라보시곤 한다.
어쩌다 아머니가 몸살이 나시면 약을 지어 나르시고, 따뜻하게 방에 불을 지피시고는 이불자락을 다독이며 보살피시던 아버지를 산자락 찬 땅으로 보내시고, 아버지와 함께 사시던 곳에서 계시겠다는 어머니는 얼마나 아버지의 이불자락을 다독이고 계실는 지…… 추위가 심한 이 겨울이 길기만 하다.
ㅡ방문 열고 나서실 것 같은데ㅡ
아침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떠났으나
열차 속에서 접한
유명을 달리한 소식이 웬 일입니까
펄펄 뛰어도 시원치 않으련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창을 향한
눈물바다 얼굴로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담을 뿐입니다
지난 여름
당신 곁에 머물다 떠나는 저를 향해
달리기를 해 따라 오실 듯한 몸짓을 하시며
환히 웃는 얼굴로 손 흔들던 아버지
마흔 여덟 해를 지켜보시던
그 하 많은 시간은 어디 두고
몇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으시고
홀연히 가셨습니까
멀리 계셔도 옆에 계신 듯
언제나 허기진 딸의 기둥이 되시던 아버님
"아버지!"하고 마당에 들어서면
환히 웃으며 방문 열고 나서실 것 같은데
산자락에 누우신 당신은
아무 말이 없으시고
당신 유택에 흙을 밟으며
가슴에 멍울지던 울음만 안고 온 지금
겨울비는 자꾸만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이시은 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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