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다녀 올 때면 바다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아쉬움만 남긴 채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난 번 부산에 갔을 때도 돌아올 시간이 채 2시간도 남지 않은 상항에서 광안리나 해운대 바다를 보고 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돌아오기가 아쉬워서 택시를 타고 부산역에서 가장 가까운 송도로 향했다.
송도 바닷가에 이십여 년을 가보지 않은 것은 예전에 본 송도
바닷가가 깨끗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남아 있어서였다. 별 기대 없이 바다를 보고 온다는 생각으로 송도로 향했다.
그런데 송도 앞바다에 다다른 나의 눈에는 완전히 다른 전경이 펼쳐졌다. 예전에 지저분하던 모습과는 달리 해안에 접한 도로가 깨끗이 정비되었고, 깨끗한 모래사장에 푸른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태풍 매미가 지나가면서 파괴된 바닷가를 많은 경비를 들여 정비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판단하곤 한다. 자기 생각과는 영 다른 결론을 얻게 되면 대체로 아쉬움이나 의아함을 가지게 되지만, 그 엉뚱한 결론이 무척 다행스럽고 흐뭇함을 느끼게 할 때는 통쾌함 마저 맛보기도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바닷가를 거닐면서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이 잔잔히 밀려왔다. 만일 그간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송도 바닷가로 향하지 않았다면, 이런 뜻밖의 풍광을 보지 못했을 것이며, 뇌리 속의 바다는 언제까지나 지난날의 그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통찰력이나 판단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이와는 다르다. 통찰력이나 판단력은 현재와 과거를 참작하여 다가오는 일을 짐작하는 혜안(慧眼)을 말하지만,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는 영 다른 결과를 생각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쾌한 바람을 타고 오던 파도와 운치를 더해주던 송도의 전경이 돌아오는 길 내내 미소를 안겨다 주었다.
이시은 / 시인
[불교신문 2180호/ 11월19일자]
위 글은 불교신문 문화면에
이시은 이 쓰고 있는 칼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