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글동네

유성에서 《문예운동》 100호 기념 큰 잔치를 열다

청담 이시은 2024. 10. 22. 10:41

 

내가 살아온 글동네. 9

 

 

유성에서 문예운동100호 기념 큰 잔치를 열다                 이시은

 

 

 

문예운동 100호 기념행사

 

 

대전 유성으로 향하는 문우들은 어느 때 보다 들뜬 마음이었다. 문예운동이 창간 50년을 맞아 100호 출간 기념행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문예운동100호 기념행사가 2008118~9130여 명의 문인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 유성유스호스텔에서 반세기를 이어 출간한 기념을 하는 뜻깊은 날이었다. 전국에서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김년균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과 이길원 국제펜 부회장도 서울에서 함께 출발하였다.

이날은 한국문학진흥재단이 주최하고 청하문학 문예운동》 《수필시대가 주관하는 제 3회 문학 세미나와 문예운동》 《수필시대신인 등단식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세미나 발표자로는 양혜경 교수. 한상렬 수필시대주간. 김봉진 박사가 맡았다.

 

행사를 여는 인사말에서 청하 성기조 선생님께서는 지난날들을 회상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문예운동100호를 기념하는 잔치가 앞으로 문예운동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이어 김년균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의 축사와 이길원 국제펜 부이사장의 축사도 있었다. 그리고 배기정 청하문학회 회장은 깔끔하기로 유명한 매무새로 무대에 올라 특유의 입담으로 행사를 자축하며 참석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문예운동1958420일 안양의 <시와 시론 동인회>에서 국판 90쪽 안팎의 동인지로 처음 창간된 책(인간사 발행)시와 시론의 효시였고, 이 책이 1998년에 계간문예운동으로 제명을 바꾸어 2008년 가을호로 100호를 발간했다. 문예운동이 계간지 임을 생각할 때 100호의 의미는 놀라운 것이다. 6. 25동란으로 피폐한 시절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간되어 오고, 100호 당시 3백 명에 가까운 시인. 작가들이 탄생하였음은 한국 문학사에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창간 동인으로는 성기조(시인). 김관식. 박거영. 이성교(시인) .김창직 (시인). 노영수(시인). 정귀영(평론가)이었으며, 창간사는 성기조 선생님께서 쓴 것으로 “이번에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이 모여서 <시와 시론>이라 이름하고 시지를 내게 되는 이유는 가치 있는 문학 활동 중 특히 시에 있어서 넓은 이론과 고도한 창작으로 봉사하고 광정하기를 인식함에서다.” 고 적고 있다.

1950년대 후반은 6.25를 겪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며, 활자를 조판하여 인쇄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잡지가 몇 되지 않아 문인들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지극히 부족하던 시절에 지면을 만들어 제공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컴퓨터로 출판작업이 편리해졌고, 수많은 문예지와 책자가 발간되는 오늘날에는, 그 시절에 책자 발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예운동100호 발간 기념행사가 있을 무렵 청하 성기조 선생님께서 문예운동을 발간하느라 집 두 채를 넘게 넣었다고 하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청하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셨고, 문인들의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하신 분이시다. 문학 수업을 하면서 초기 문학지들이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몇 호 발간하고 폐간해야 했던 것이 발간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는 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문예지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수령 65년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다양하게 꾸며진 2부 행사의 즐거움

 

 

 문예운동 100호 기념행사는 문학 세미나와 문예운동수필시대신인 등단 시상식 및 2부 행사가 있었다. 2부 순서로 열린 저녁 행사장에서 문인들의 숨은 장끼와 열연으로 재미와 더불어 화기애애한 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이은집 소설가는 무대복을 갖추어 입고 진행을 하였으며, 시 낭송과 더불어 단막극과 무용. 창 등 출연 문인들의 끼와 노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흥겨움에 참석한 문인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찬조 출연으로는 각설이 타령과 바이올린 연주가 있었다. 각설이 타령은 구수한 입담과 노래로 흥겨움을 더했고, 바이올린 연주는 차분한 느낌으로 음률에 빠져들게 했다.

회원들이 꾸미는 무대에서 가영심 시인과 김효정 시인은 단막극으로 웃음을 선사하였으며, 김경숙 시인이 출연한 살풀이춤 무대는 소복을 입고 한을 풀어내는 듯 긴 수건을 휘날리며 춤사위를 수놓았다. 그리고 이은집 소설가의 각본으로 올려진 콩트 무대는 웃음을 선사하였으며, 채인숙 시인과 김선희 씨가 열연한 맘마미아의 댄싱퀸공연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무대로 나가 흥겹게 춤을 추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 무대에서 성기조 선생님과 배기정 청하문학 회장. 정광수 선생등 여러 분들께서도 나름의 춤솜씨를 뽑냈다. 필자 또한 이 행사에서 노래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뜨거운 열기로 2시간 40분에 걸친 행사를 마치고 회원들은 청하 선생님을 비롯해 호스텔 로비에 모여 앉아 밤이 늦도록 웃음꽃을 자아냈다. 흥이 가시지 않은 참석자들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장기자랑을 하였다. 그 장기자랑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김귀희 시인의 노래였는데 숟가락을 마이크로 사용하며 그 특유의 콧소리와 몸을 비틀며 부르는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설운 사~연에....”로 시작하는 노래에는 모두 폭소를 터트리며 웃기도 했다. 김귀희 시인은 같은 말을 해도 윗트 있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 후에도 모임에서 김 시인의 그 특유의 노래를 몇 차례 더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문인들은 청하 성기조 선생님을 비롯하여 가영심, 강영훈. 김건중, 김경숙, 김귀희, 김년균, 김병권. 김봉진, 김수정, 김효정, 김희선. 두안, 배기정, 서정혜, 안재진, 안학원. 양혜경, 이경만, 이기애, 이길원, 이시은, 이예지, 이은집, 이창년, 정광수, 주원규, 채인숙. 최충식, 한상렬, 한새빛 (가나다순)130여 명이다.

 

 

 

 

동학사 답사와 배기정 시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일행들은 계룡산 동학사로 향했다. 동학사 가는 길에는 떨어져 내리는 낙엽과 단풍이 사찰을 찾아가는 일행들을 반겼다. 도심을 떠나 산사를 찾는 일행은 모처럼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삼삼오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일정을 즐겼다.

계룡산국립공원은 산이 깊은 곳이라 동학사와 갑사 그리고 신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산사를 찾을 때는 계절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낙엽이 깔린 길을 걸어가는 마음은 더욱 사색에 물들게 하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하였다.

청하문학 회장이던 배기정 시인은 재치가 있으면서 유머러스한 분이셨다. 우스운 말을 하고서도 본인은 웃지 않고,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무심한 듯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이 더욱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특유의 입담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날도 함께 걷는 일행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였다.

위암 수술을 하고 나는 살고 싶다<서울 詩壇> 낭송 무대에서 울분을 토하던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유명을 달리한지도 오래다. 더 살고 싶었던 삶을 하늘나라에서 누리시길 빈다.

한국문인협회에서 격년으로 개최되는 제6배기정 낭송 대회가 올해도 열린다고 한다. 배기정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초대 홍보위원장을 했다. 배기정 시인이 한국문인협회에 1억을 낸 것을 기금으로 배기정 낭송 대회를 개최해 왔다. 배기정 시인의 유지대로 오래도록 시 낭송 대회가 이어지길 바란다. 선배 문인 중에는 필자를 아껴주던 분이 많았는데, 배기정 시인께서도 필자를 아껴주던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