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셀랑고르 비지터 센터 (Royal Selangor visitor Center)방문
이시은( 시인. 청하문학 고문)
은은한 빛깔의 액자가 가족사진을 담고 있다. 세공한 문양이 좋아 먼지를 닦을 때마다 눈여겨보곤 하던 주석으로 만든 액자이다. 오래전 아이들의 사진을 넣으려고 사 온 것이다. 주석액자를 바라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들렸던 로열 셀랑고르 비지터 센터(Royal Selangor visitor Center)를 떠올린다. 쿠알라룸푸르의 관광명소이기도 한 이곳은 유명한 주석 공예공장이다. 주석은 전도성과 유연성이 좋은 은색 광물로 말레이시아의 주요 생산물이다.
19세기 후반 주석이 많이 나는 말레이시아가 영국령으로 있을 때 주석 광산에서 일하는 중국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 주석 공예공장을 만든 사람도 중국 사람이다. 중국에서 온 공예가 용쿤에 의해 1885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혼자서 촛대와 잔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여러 번 시련을 이기고 숙련된 기술자들과 생산을 늘려 지금은 로열 셀랑고르 Royal Selangor라는 상표로 수십 개의 전시실과 200여 곳이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나라 중요 백화점에 진열된 공예품으로 자리 잡았다. 생활용품에서 캐릭터를 비롯한 우표까지 1000여 종의 상품을 만들고 있다.
왕궁에 들렸다 찾아간 로열 셀랑고르 비지터 센터는 조용했다. 공장이 쉬는 날인데도 기념품 전시관과 작업실을 볼 수 있었다. 전시실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수작업으로 만든 작품들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은색을 띤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색상이 공들여 만든 작품을 더욱 고급스럽게 느껴지게 했다. 쟁반과 잔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격들이 만만치 않았다. 몇만 원하는 잔에서부터 수천만 원짜리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격만큼이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상품들은 예술품이라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하게 느껴지는 백조 한 쌍이었다. 마치 날아갈 것 같았다. 백조를 바라보다 가격표를 보고 놀랐다. 백조 한 마리가 1억 원이란다. 백조 한 쌍의 가격이 2억 원이라니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백조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 생각했다. 전시실을 돌아보며 단순한 기념품 전시관이 아니라 수준 높은 상품으로 고감도 감성마케팅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로열 셀랑고르가 세계적 상품으로 자리 잡은 데는 이렇게 정성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실을 나와 쿠알라룸푸르의 명소인 페트로나스 투윈타워 모형 앞에 섰다. 실물을 50분의 1로 만든 주석 모형의 크기가 10m에 이른다. 주석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시물이라 느껴졌다. 모형빌딩을 카메라에 담고 이동한 공장 내부에는 작업하는 사람들이 없어 설렁했다. 아무도 없는 작업실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손이 빚어내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체험공예도 있지만, 쉬는 날이라 주석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채워진 부분이 있으면 빈 곳도 있기 마련 인지라 조용한 내부에서 마음껏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므로 대리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초기 광산에서 주석을 채취하는 모습을 비롯해 지난날의 사진을 걸어두어 공장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용쿤의 흉상이 1세기를 훌쩍 넘어 이어오는 공예공장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혼자 시작하여 오늘날의 주석 공예공장을 일군 모습을 보면서, 동남아 일대를 여행하며 본 밀집된 중국 상가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화교華僑들의 집단 상업 촌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은 그들의 상술과 결속력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공장과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니 더운 공기가 몸을 달구었다. 또 한 번 눈을 크게 뜨게 하는 커다란 맥주잔이 눈앞에 다가섰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맥주잔의 높이는 1.987m이며 무게가 1,557kg이라 한다. 주석으로 만든 맥주잔이다. 그 잔에 맥주를 채우면 목욕을 하고도 남을 용량이다. 맥주잔을 입구에 세워 놓은 것은 이곳의 상징일 것이다.
주석잔에 맥주를 담으면 냉기를 유지해 맛이 더한다고 한다. 자그맣고 예쁜 문양을 새긴 주석 병에 양주를 담아놓고 음미하던 지인의 모습을 생각하며, 해외여행에서 사 왔다며 그 병을 이끼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섬세하게 세공한 모양을 보면 아마도 로열 셀랑고르의 상품이 아닌가 한다.
날씨가 더위를 느끼게 한다. 연록으로 아름답던 때가 어제 같은데 녹음으로 우거져 푸르름이 짙어졌다. 열대의 더위 속에 쿠알라룸푸르를 다녀온 지도 어제 같은데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올해 여름에는 기념품으로 사 온 술잔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로열 셀랑고르 비지터 센터에서 본 전시품을 상기해볼까 한다. 아름다운 추억은 살아가는 날의 자양분이 될 테니까. 로열 셀랑고르(Royal Selangor) 상표가 적힌 커다란 맥주잔에 기대고 선 사진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띄운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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