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울릉도를 돌아보며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7. 9. 30. 17:27

 

울릉도를 돌아보며

 

                                                                        이시은

 

입안에서 녹는 울릉도 호박엿이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을 녹여들인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울릉도로 향하는 여정 길에 올랐다. 육지가 아닌 해상길이라 걱정을 했으나, 바닷길을 가는 내내 비가 오긴 하였지만 파도는 잔잔했다. 울릉도에서 연 이틀 조금씩 차창에 맺히는 빗방울은 더위를 적시는 물수건 같았고, 햇살을 가린 구름은 양산처럼 느껴졌다. 비가 내린 덕분으로 절정이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여행은 순조로웠다.

 

저동항에 내려 도동으로 향하는 길부터 이곳의 지형이 가파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수기에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붐빈다는 도동에 숙소를 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씨와 계절 탓에 조용하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왔다. 가는 곳 마다 인파로 지치는 것을 이곳에서 조차 하기는 싫었던 내심 때문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섬 전체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같은 시기에 형성된 형제의 섬인데 덩치가 적은 독도가 형이란다. 울릉도와 87.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독도가 덩치가 큰 아우인 울릉도와 우리나라 동해를 지키는 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마그마가 흘러내려 넓게 형성된 제주도와는 달리 가파른 절벽을 이루는 형태의 섬으로 최고봉인 성인봉은 984미터나 된다. 평지를 찾아 볼 수 없는 섬이라 밭이라고는 비탈에 조금씩 붙어 있다. 그 밭에는 능이나물을 비롯한 특산물 나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관광버스로 섬을 돌아보며 가파른 지형 탓에 도로가 좁은 울릉도의 관광버스 기사의 운전 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로 잰 듯이 꺾어 도는 솜씨는 내게는 묘기처럼 신기했다. 얼마나 이 길을 오갔으면 저리도 정확히 꺾어 돌 수 있을까? 분명 반복 연습이 가져다주는 능력일 것이다.

 

울릉도 도로에는 낙석이 많아 비가 온 후에는 여러 곳에서 낙석이 떨어진다고 한다. 낙석이 심한 곳을 터널로 만들어 놓았다. 화산석 특유의 구조로 점질의 강도가 약한 탓이기도 하며, 균열이 심한 때문일 것이다.

 

여러 곳을 둘러 나리분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평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토록 험난한 지세에 칼테라 분화구가 무너져 내려 생긴 나리 분지가 산에 둘러싸여 눈앞으로 펼쳐진다. 분지에는 옥수수를 비롯한 농작물들이 육지나 다름없이 하늘을 이고 서 있다. 일행들과 씨껍데기 술 한 잔에 더덕부침을 먹었다. 술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그 특산물 술을 한입 하도록 고목 아래 놓여 진 의자와 빗방울이 간간이 돋는 날씨는 분위기를 잡았다. 취기를 즐기는 술꾼이 아닌 자의 옅은 취기 그 또한 여정의 흥겨움이 아닐까.

 

아무래도 울릉도 여행의 백미는 도동항에서 이어지는 바닷길 산책로와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유람선에 몸을 실어 돌아보면서 전날 관광버스로 돌아본 전경들을 멀찌감치 원경으로 바라보는 느낌은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보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조망되는 풍경들이 원근의 차이를 넘어 또 다른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 선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있기 마련인기 보다.

 

유람선은 검푸른 바다를 가르며 새하얀 포말을 자아낸다. 해설자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돌아보는 울릉도 부근 바다의 수심은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동해의 수심이 평균 2000미터라고 한다. 그래서 저 물결은 검푸르게 치마를 두르고 깊이를 말하고 있을까. 그 엄청난 수심도 잊은 채 뱃전에 스치는 풍광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이렇게 앞만 보고 살 수 있음 또한 얼마나 다행 한 일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마저 않고 산다면 얼마나 두려운 시간을 견뎌야 할까.

 

코끼리 바위는 여러 형태의 주상절리가 뒤섞여 신기하기 그지없다. 울릉도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들은 다양하게 이루어져 절리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든다. 창조주는 다양한 모습들을 만들어야 속이 시원 했을까. 오늘 바다의 깊이조차 망각한 사람들의 환호를 미리 알아차렸나 보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본 후 서둘러 도동 해안 길을 나섰다. 화산바위로 이루어 진 해안 산책로는 군데군데 동굴을 가진 아름다운 길 이었다. 철썩대는 파도를 품어 안는 동굴의 물빛은 맑다 못해 비치알을 쏟아놓은 듯 아름답다. 온통 화산바위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시간에 쫓겨 아쉬움을 남긴 채 되돌아섰다. 하지만 절경들은 대부분 보고 왔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언젠가 가보리라던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오는 마음은, 다행스러움과 자연이 안겨 준 선물들에 감사한 마음 이었다. 날씨가 그랬고, 풍광이 그랬고,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독도를 밟아보고 오는 마음이 그랬다. 동해를 지키며 수심 깊이 발을 딛고 외로이 떠 있는 두 섬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든다.

 

기념으로 사 들고 온 울릉도 호박엿이 여정의 느낌처럼 달큰하게 입안을 감돈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