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봄꽃과의 만남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7. 5. 21. 21:15

 

봄꽃과의 만남

                                                                                                    이시은

 

 

꽃이 없는 봄을 생각 할 수 있을까! 차가운 날씨와 삭풍을 견디며 지낸 겨울이 있었기에 봄은 더욱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다 주는 것이리라.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산수유와 매화가 메마른 가지에 꽃눈을 틔우면서 봄은 성큼 우리에게 다가 선다.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에도 봄꽃과 더불어 상쾌한 기운이 감돌고, 콧노래를 부르며 꽃을 찾아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개나리와 벚꽃이 앞 다투어 피어나고 진달래꽃이 산야를 물들이면, 봄꽃들의 축제는 절정에 이르고, 사람들 또한 야외로 나서기를 좋아 한다.

 

꽃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다. 즐겁고 반가움이 있는 곳을 향하는 발걸음은 상쾌하고, 행복함에 젖어든다. 꽃은 아름다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꽃을 보면서 기분이 나쁘고 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꽃을 보는 마음이 즐거움으로 차오르기 때문에 너도 나도 꽃놀이를 떠나는 것이리라.

 

나 또한 꽃놀이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여 봄마다 꽃을 찾아 나서곤 한다. 때로는 호젓한 산길에서 맞이하는 진달래를 찾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를 찾아 나서기도 하며, 눈 내린 듯 연분홍 꽃잎으로 가지를 뒤덮은 벚꽃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꽃비라도 맞는 날이면 즐거움은 최고조에 달한다.

 

꽃과의 만남도 그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호젓이 피어 있어 조촐한 정감을 나눌 수 있는 진달래는, 자주 보지는 못해도 모처럼 만나면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인과 같고,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만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에서 반가움과 흥겨움을 함께하는 기분이다.

 

여러 가지 꽃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꽃은, 이른 봄 앙상한 가지에 새하얀 꽃잎을 탐스럽게 피워내는 목련꽃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잎새가 나오기 전에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유달리 목련을 좋아하는 것은 꽃의 색깔이 연미색으로 청순하고 우아한 모습이 좋아서이다. 내 모습이 우아하고 청순한 모습을 닮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살이가 어디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기가 쉬운 것인가. 생각과는 달리 전개되는 것이 비일비재한 것이고 보면, 흐트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목련의 자태를 생각하며 다듬고 싶은 생각도 한 몫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고국에는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꽃불을 지피고 있는 데, 나는 열대의 나라에서 에어컨을 켜 놓고 푸르른 녹음을 시야에 담고 있다. 물론 이 곳에도 꽃들이 피어 있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 피어나는 봄꽃에 대한 마음이 오래 볼 수 없는 정인 같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다가섬을 어쩌랴. 내가 돌아갈 때 쯤에는 지금 피어나는 꽃들은 볼 수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이면 으레히 볼 수 있는 풍광이라 생각 했건만, 중요한 일을 빠뜨리고 마는 듯 한 느낌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컴퓨터로 고국에서 피는 봄꽃들을 불러내어 아쉬움을 달래본다. 참으로 다행이다. 전국 각지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화면가득 영상으로 채워놓고 감상을 한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광들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려놓은 사람들의 덕분으로 비켜가는 봄꽃들과 조우 할 수 있음이 고맙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내게 아쉬움을 채워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사람들의 작은 행위들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고, 불편함과 고통을 줄 수도 있음을 실감한다.

 

창가에 서 있는 파초가 뜨거운 태양아래 잎자락을 펼쳐들고 바람을 기다리고, 호수에는 잔물결이 수면을 수놓고 있다. 때로는 해외로 훌쩍 떠나오고 싶은 날들도 있지만, 언제나처럼 돌아갈 날이 기다려짐은 어쩔 수가 없다.

 

볼 수 있는 사람 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그립고, 갈 수 있는 곳 보다 가지 못하는 곳에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보지 못하는 봄꽃을 먼 나라에서 보고 싶어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통해서 보며 돌아 갈 날을 기다린다.

 

내가 돌아갈 때면 전국을 수놓는 화려한 벚꽃 축제는 끝나겠지만, 연녹색 새순이 대신하여 아름다운 잎새를 내 밀고 반길 것이다. 화려한 꽃무리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나를 기다리는 연녹의 물결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소중히 갈무리해본다. 돌아오는 봄을 또 하나의 기다림으로 키우면서......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