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어머니의 재봉틀

청담 이시은 2014. 1. 7. 07:20

 

 

 어머니의 재봉틀

                                                                                               이시은


 

 방 한 켠에 재봉틀이 초라하게 놓여 있다.
"윤실아 걸레 좀  가져다 도오……." 어쩐지  풀기 없는 음성으로  마루에 앉아있는
 내게 던지는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찢어진 이불 호창을 손에 들고 재봉틀이 놓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색 바랜 보자기에 덮여있던 재봉틀을 힘을 다해 방 복판으로 끄집어 내셨다. 어머니는 잊고 있었던 지난 날을 되살리려는 듯 낡은  손틀의 구석구석을 닦고 있었다. 이 재봉틀은 내가 사물을 가장 먼저 기억했던 것 중 하나다. 그것은 어머니의 혼수함과 함께 집으로 들여온 해 묵은 살림살이다. 


 어머니는 여름철이면 마루에다  재봉틀을 내다 놓고  폭 넓은 삼베  이불을 만들었고, 겨울이면 방 안에서 가족들의 옷가지를 지으셨다. 할아버지의 명주 바지 저고리부터 우리들의 예쁜 원피스까지 잘도 만드셨다. 가끔씩  개 짖는 소리와 솔바람 소리만 쏴아하게 들려오던 겨울엔 밤이  이슥하도록 달달달…… 달달달…… 재봉틀은  목청을 돋구어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에 일역을 하였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닷새 만에 열리는 장터에서 빛깔이 곱고  무늬가 예쁜 천을 사 오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서야 배워 알 수 있던  옷본을 만들어 놓고 예쁜 셔츠와 바지를 만들어 입혀 보고는 꼭 맞다고 좋아하셨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동네 어느 집에서 발틀을  사 왔다. 키가 작고 앉아서 바느질을 해야하는 어머니의 재봉틀은 오랜 세월동안 혹사를 당해서 인지 초라해 보였다. 마치 고의 적삼을 입은  시골사람과 양복을 건사하게  차려입은 도회지 사람처럼,  어린 나의 눈에도 발틀이 근사해 보였다. 재봉틀을 새로 사자고 졸라대는 철없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시며,  방 윗목에 오롯하게 앉아있는 재봉틀을 정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 재봉틀은 당신에게 매우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셨다. 많은  가족들의 옷가지를 만들어 주던 당신의 손과 같은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마을은 예식장이 따로  없는 시골이었다. 동네  처녀들이 시집가던 날, 어머니는 까만 비단  천에 오색 구슬이  조롱조롱 달려있는 족두리를  수복壽福자가 새겨진 조그만 함에서 꺼내들고  가셨다. 뽀오얗게 분을  바른 채 수줍어하는  신부에게 족두리를 씌워주고,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곤 했다.


 어머니는 문득 생각이 난 듯 소중히 간직해 온 족두리를 꺼내 왔다. 찬찬히 살펴보며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혼수로 주신 재봉틀과, 할아버지께서 며느리의 예물로 주신 족두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하셨다. 저 세상에 계신 외할머니가 생각난 듯 이끼 낀 담 너머로 물기 어린 시선을 옮겨 놓으셨다.


 어머니는 결코 새 재봉틀을 들여놓지  않으셨다. 비 오는 날이면 으레  어머니와 함께 재봉틀은 낮게 드리운 저녁 연기가 멀리멀리 피어오를 때까지 가족들의  옷가지를 꿰매고 있었다. 재봉틀에 기름 걸레질을 마친 어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몇 번이고 바늘에 실을 꿰려고 하셨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실을 꿰어달라고 하면서 나의  손에 실을 넘겨 주셨다.
 어머니는 지나온 세월 동안 쌓아올린 연륜을 새기듯이 한 땀 한 땀씩 이불 호청을 박고 계셨다. 빛나던 눈매는 흐릿해져  있었고, 곱던 얼굴에는 인고忍苦의  세월이 파놓은 주름살만 가득히 자리하고 있었다.  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을 같이  해 온 낡은  재봉틀 앞에 앉아 가물거리는 바늘땀을  보려고 눈을 부비셨다.  검버섯이 피어난 주름진  손은 팔 남매의 맏며느리로, 우리 칠 남매의 어머니로서 소리 없이 살아온 사랑과 헌신의 일생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달달달…… 달달달…… 초라한 재봉틀과 늙으신 어머니가 함께 연주하는 노래 소리는 그 어느 악단의 음율보다 아름답고 그윽함이 담겨 있었다. 그 노래 소리가 여자는 시집가서 가문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르시던 부모님의 말씀처럼 들려 왔다. 결혼 날짜를 정해두고 딸을 떠나 보내기 서운해 하셨던 아버지께서, 나에게 시집 가서 어머니의 절반만 행하여도 부끄럽지 않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여운이 되어 흘러 내렸다.


 바램이 없이 오직 베푸는 것으로  흡족해 하며 도리로만 사셨던 어머니와,  말없이 어머니의 한 평생을 함께 해 준 재봉틀처럼 나는 부끄럽게도 소리 없이  행함을 실천하지 못해 왔다. 


 이 다음에 남편도 딸 아이가 시집 갈 때 우리  아버지와 같은 말을 들려줄 수 있을는지……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고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