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지친 한 해를 보내며
이시은(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보신각 재야의 종소리를 들은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새해를 맞이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67년 만에 타종 행사도 취소되었다. 매번 찾아오는 연말이고 새해이지만, 유난히도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이토록 온 세계가 코로나에 휩쓸려 혼란스러울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엄청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세계 대전 때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무기 없는 전장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코로나의 발병이 늘어나, 의료진들은 지칠 대로 지쳤고, 병상이 모자라 입원을 할 수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시로 확진자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날아든다. 모임들이 취소되고 지인의 길 흉사에도 참석을 자제하며, 가족들의 만남마저 삼가하고 지내다 보니 불안과 우울함이 쌓여가는 날들이다.
연말이면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고 미진했던 일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아쉽고 어수선한 마음을 덮으려는 듯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렸으나 이내 진눈깨비가 되어 눈이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던 터라 반가웠다. 창밖을 바라보며 한 해 동안의 일들을 떠올려본다.
이 와중에 가까운 지인은 다리 부상으로 입원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당연한 것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회복 기간 동안 휠체어와 목발을 짚으면서 그 동안 마구 부려먹던 다리의 고마움을 절감했단다. 그렇다, 지인이 받았던 고통처럼 우리는 간간이 이용하거나 일어나는 일들은 각별하게 여겨지고, 항상 누려가는 것들은 당연하게 여겨 가치나 고마움을 생각지 않고 살아가지만, 정작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크나큰 불편을 겪고 소중함을 절감하게 된다.
해마다 다녀오는 친정아버지 기일에 가지 못하는 것이 서운했다. 떨어져 사는 형제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를 다지고, 정을 나누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마저 코로나 확산 때문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마다 환자들의 병문안은 금지되고, 몸이 불편해 연로한 부모가 입원한 요양 병원도 가족들의 면회가 되지 않아 장기간 부모의 상태를 볼 수조차 없다. 면회조차 할 수 없었던 부모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망연자실하던 자식들을 생각하며, 제사에 참석하지 못해 서운했던 마음을 달래본다.
하루 천 명이 넘는 환자가 발병하는 상황이다. 방역수칙 2.5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 어렵고 답답한 시간을 넘어 설 수 있을까. 거리나 상점에서도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을 가까이 접하기가 무서운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버티기가 힘겹다.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는 힘겨운 삶 속에서도 다양한 트로트 경연이 열풍을 일으키며, 우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 해였다고 생각된다. 나이가 조금 든 사람이면 누구나 토로트를 불러 보았을 것이다. 트로트야말로 삶의 애환을 담고 우리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노래다. 우리의 한과 흥이 배어 있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하며 가슴을 울리던 노래이다. 다른 장르에 밀려 자리를 잃어가다 지난날의 전성기 자리를 되찾았다. 답답한 시간을 보내면서 힘겨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가요가 더욱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가 닿은 듯하다.
연일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느라 기진맥진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은 바로 이분들이다. 그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하루속히 코로나가 근절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원한다.
암울한 날에도 시간은 흐르고, 오늘은 또 어제가 되어 한해가 마무리되어 새해를 맞는다. 지나간 시간은 과거 속에 묻고, 활기차고 보람된 날들을 되찾아 그간 소원했던 지인들과 만나 정담을 나누고, 편안하고 활력에 찬 나날을 살아갈 수 있는 새해가 되길 빌어 본다.
한국문학신문<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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