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다시 찾은 소래포구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8. 6. 14. 11:26

 

 

                                             다시 찾은 소래포구

                                                                                    이시은

 

촉촉이 내리던 비가 그친 하늘은 밝게 빛나고 나뭇잎도 푸르름을 더해가 밖으로 나서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까마득한 기억 저편 협궤열차를 떠올리고 소래포구로 향했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말로만 듣던 소래포구를 다녀온 지도 스물세 해가 훌쩍 지났다. 그 후 서너 차례 그곳을 다녀왔지만 이번 길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래포구 주변은 몰라볼 만큼 달라졌다. 개펄 가로 여유로워 보이던 곳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찼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어시장에 들려 한 바퀴 돌아보고 협궤열차가 지나다니던 다리를 찾았다. 다리 주변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을 헐어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눈앞에 나타난 다리는 진입로부터 낯선 모습이다. 처음 본 다리는 협궤열차가 철컥이며 지나가던 풍경이었고, 다시 찾았을 때는 열차의 통행이 끊어진 철길 변에 상인들이 먹거리를 팔며, 침목을 밟고 가는 사람들을 호객하던 모습이다.

 

다시 십수 년을 지나 만난 철로와 다리의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입부터 현대 감각에 맞게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알고 찾지 않으면 예전에 그 철길이 지나가는 다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애써 예전 모습을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다리를 살펴보았다. 다리 중간에 투명한 판을 깔아 침목 사이로 바닷물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 하는 장치는 하여야 하겠지만 조금 더 원형을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발전된 모습이 반갑고 고맙기도 하지만,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이 도심 속에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러움도 느꼈다. 예전 모습만 그리고 간 나의 생각이 짧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느리게 벅찬 숨을 몰아쉬며 지나가던 열차의 모습이 다가선다. 처음 소래포구를 찾고 싶었던 것은 고깃배가 드나들고, 갈매기가 날아도는 포구의 다리를 자그마한 열차가 지나가는 낭만을 생각하며, 그 느낌을 즐겨 보고 싶어서였다. 이곳을 찾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협궤열차에 무거운 세우 젖을 싣고 장삿길을 다니던 사람들의 고달픔이 뒤늦은 지금에야 가슴에 와 닿을까. 나의 아픔과 고달픔은 뼛속까지 스며들고, 삶의 현장은 고달프게 느껴지지만. 남의 힘겨움은 소홀이 생각되어서 인지, 오늘도 일탈을 꿈꾸며 이곳으로 발길을 놓지 않았던가.

 

지금은 추억 속에 남아 있는 협궤열차이다. 철로 폭은 일반 열차의 표준궤도의 절반에 불과했다. 앉으면 무릎이 맞닿을 듯 협소한 열차는 인천에서 출발해 시흥, 안산, 화성을 거쳐 수원에 이르는 최고속도 50㎞인 증기 기관차였다. 1937년 7월 19일에 개통하여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58년 동안 운행되었다. 교통수단이 미비했던 당시 일본은 내륙의 물자를 인천항으로 가져가는 화물 운송을 목적으로 건설한 철도였다.

 

해방 후에는 민간인들의 교통수단으로 보따리 장사와 소래포구 젓갈 장사들이 이용하였다. 통학 시간에는 학생들로 붐볐고, 역마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짐을 짊어 진 상인들이 이용하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열차이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협궤열차에 대한 특집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름만큼이나 협소한 차내에 짐과 함께 비좁게 앉고, 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달픔과 짭짤한 젓갈냄새가 배어나는 듯했다.

 

다리에서 서성이는 동안 빠졌던 물이 개펄을 적시며 조금씩 차오르고, 조업 나갔던 배가 상자에 생선을 싣고 소래항으로 들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원래 10t 미안의 작은 배들이 모여 조업을 하던 포구였다. 날마다 조업을 해 와서 어물이 신선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포구의 정박 중인 아담한 배들이 출항을 기다리며 쉬고 있고, 갈매기는 나래 짓을 하며 사람들과 친숙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 놓인 다리들이 갯벌을 가로질러 서 있다. 도로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보여준다. 줄줄이 서 있는 아파트와 주변의 도로들이 그간의 변화를 말하는 듯하다. 세월만큼 많이도 변한 소래포구에서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분주하게 열심히 살아온 듯하지만, 몰라보리만치 변해버린 경관을 바라보며, 나의 변한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 질지 생각에 젖게 한다.

 

오래전 갈매기가 날아드는 노을 지는 포구에서 협궤열차가 지나는 모습을 낭만과 멋스러움으로 바라보던 내게, 이만큼의 세월이 삶의 애환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다준 것일까.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협궤열차에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오늘도 출어 준비를 하고 바다로 향하는 어부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곰삭은 새우젓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석양빛은 유난히 붉게 앞을 비춘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