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텃밭
이시은
봄부터 시작되는 설레임을 찾아 아파트를 나서 채전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언젠가 뾰족이 솟아오른 보리들이 겨울의 냉기를 이기고 새순을 틔우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색 일색인 아파트 단지에 노오란 산수유 꽃이 여인의 튀밥진주 귀걸이가 달린 듯 피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뭇가지마다 연녹색 잎새들이 나비처럼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제법 푸른 숲을 만들고 있다. 일곱 해 전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아파트 주변으로 조경수를 심기는 하였지만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신도시 건설이라는 이름 아래 빈 벌판에 아파트들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수도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 짐을 꾸렸다. 그 짐 보따리와 함께 이곳 중동으로 우리 가족들도 이사를 했다. 아울러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 중학교를 다니던 나이 또래의 중학교 일 학년과 이 학년의 두 아이를 전학시켜 왔다.
집을 넓혀 온다는 흥분과, 한창 학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을 떠난다는
불안함이 실타래처럼 엉긴 가슴으로, 낯설기 그지 없는 이곳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낯설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주위의 풍경은 휑그르한 가슴에 외로움을 더하게 했다. 아파트 옆에는 상업용지로 지정한 수만 평의 공터가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비싼 상업용지로 분양해 도시계획에서 얻어지는 많은 이익을 남기고자 했던 시의 방침과는 달리 여태 미분양된 나대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 해 봄부터 아파트 주민들은 이곳에 조금씩 텃밭을 일구기 시작하여, 어느 새 그 넓은 곳에는 채전밭으로 이어지는 들판이 생겨났다. 밭을 일굴 정도로 시간의 여유를 갖지 못한 내겐 단 한 평의 텃밭도 없었지만, 그곳은 나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한 곳 이었다. 어린 시절 찔레꽃이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나고, 암탉이 어린 병아리를 거느리고 흙을 파던 채전 밭가에서 보았던 채소들이 봄비와 함께 돋아나, 가을이 될 때까지 나날이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모습은, 새로운 경이로움이며 고향의 따스함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곳을 찾았다.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가로수가 심어져 있고, 그 옆으로 펼쳐진 밭에는 호박, 오이, 토마토, 상추, 치커리 등,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채소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다. 시골 채전 밭에서 찬거리를 장만해 웃음과 함께 이웃에게 상추나 쑥갓 한 움큼씩을 나눠주던 소박한 인심을, 윗층에 사는 할머니와 진우 엄마는 해마다 전해 주어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이곳은 아스라한 나의 유년이 살아나고, 허덕이며 걸어온 지친 영혼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안을 가져다 주는 어머니 가슴 같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아침저녁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의 밭에는 도라지꽃이 별처럼 피어나고, 얼굴이 그을릴세라 창 넓은 모자를 쓰고 소꿉놀이처럼 밭을 일군 젊은 아낙네의 밭에도 가지가 뾰족이 얼굴을 내밀곤 한다.
어느 새 도회지 여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월이 삶의 절반을 훨씬 넘어섰건만, 언제나 시골뜨기로 남아 있는 가슴은 그대로이다. 도심의 삭막함을 견디기 어려워 문득 차를 몰고 들판을 찾아 떠나는 나에게는, 아파트 울타리 너머 이토록 풍요로운 들판을 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새순이 돋아나면 이곳을 서성이곤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도 전에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저녁이면 밤이 이슥하도록 밭가를 걷곤 한다. 풀숲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를 혼자 듣기 아쉬워, 핸드폰을 연결해 먼 곳에 사는 지인에게 들려주는 여름밤은 싱그럽기 그지 없었다. 이런 재미는 이 곳으로 이사와 정을 붙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은 거짓말은 아닌 듯 하다. 어디 고향만이야 하련만 정붙이고 살면 살아 볼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도저히 정붙이고 살 것 같지 않아 두 해가 넘도록 힘겨워했건만, 여섯 해가 지난 지금은 편리하고 쾌적해 살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넓은 도로가 그렇고, 지척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백화점이 있어 그렇다. 무엇보다 살맛을 돋구는 것은, 울타리를 따라 피어나는 개나리가 지고 나면 붉디붉은 줄 장미가 타는 듯이 피어나고, 무성해진 나무들은 사철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또한 밭가를 걷는 재미가 소솔해서다.
지난 겨울부터 인근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자리에 모델하우스가 생겨나고, 관할 관청에서 무슨 계획이 있는지 올해는 밭을 일구지 못하도록 한다는 소문이다.
정성스럽게 흙을 일구던 손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황폐한 땅들만 남겨진 것이 미안해서인지, 주위와 그리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통나무로 만든 조형물 몇 점과 함께 서너 마지기 됨직한 곳에 보리가 심어진 사실은, 느티나무 가로수가 녹색 옷을 입으면서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보리는 토실한 이삭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시골 생활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회색 빛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이곳에서 언제까지라도 귀뚜라미 우는 들판이 있어 주길 원하는 것이 과욕이라면, 보리이삭 피어나는 한 뙈기 밭 자락을 바라볼 수 있음조차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혼자 가꾸던 마음의 텃밭을 잃어버린 것 같아 보리밭 주위의 생기 없는 빈터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