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 수필방

하늘 저 편에서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06. 9. 17. 14:24

 

 하늘 저 편에서

                                                    이시은


 

  이끌리듯 교문을 들어섰다.


  무성한 잡초들만 이곳 저곳에 스산하게  자라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정든 모습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또르르 구르던 그 옛날 친구들의 모습도,선생님의 얼굴도 한낱 스쳐가는 영상으로 남아 있고, 빈 교정에는 아이들의 그림자마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발길을 들여놓은 나의 초등학교 교정 모습이다.

 

 학생들이 줄어들어 폐교한 지 이미  오래였고, 교정에는 망초꽃만 저 세상에  계신 선생님의 영혼인 듯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을날 벼가 노오랗게 익어가던들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선생님의 모습같아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선생님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계신다. 어느 날 그분을 뵌  후로 무거운 짐을 걸머진 듯한 느낌과 죄송함을 지울 수가 없다.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짐 진 모습이라 하겠지만, 가슴 한 곳에 숙제를 하지 못한 학생처럼 홀가분하지 못한 응어리 하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차피 풀 수  없는 숙명처럼 내게 주어진 능력이 모자라고 보면 거론조차 할 일이 못되겠지만, 나로 하여금 실망을 하셨던 그분에 대한 도리인 것 같아서이다.


 '성낙오'선생님은 나의 초등학교 오 학년과 육 학년을 연임으로 가르치신 담임이셨다. 당시에는 중학교 선발고사 입시제도가 있던  터라 늦은 저녁 시간까지 우리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통근을 하시던 선생님은 동네  사랑채에 방을 얻어 야학을 시켜가며 우리들의 입시에 전력을 다하셨다. 엄하면서도  제자들을 사랑하시던 선생님은 나의 중학교 입학과 함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  후 결혼을 하여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 고작 두어 번 찾아 뵌 것이 전부였다.


  친정 아버지가 계시던 학교 관사에서  며칠을 보내던 때였다. 아버지로부터  선생님의 안부를 전해 듣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젊은 패기로 우리들을 가르치시던 모습은, 육순을 넘은 노 교육자의 모습으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셨다.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마주잡던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은 짧기만 했다. 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지셨다. 그리고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너는 참 유별난 아이였어……"하고 잠시 말을 끊으셨다.


  나를 졸업시킨 후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면서 그 아이들에게서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나와 비슷한 모습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셨다고 한다.  그 만큼 나에 대한 관심이 깊으셨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찾아 볼 수 없었다는 말씀과 함께, 그 많은  얼굴들 중에 내게 가장 기대를 걸었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시며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어느 것 하나 변변치 못한 내가 무슨 연유로 선생님께 그렇게 비쳤는지 알 길은 없지만, 사모님께서 지금까지 나의  이름을 기억하실 만큼  때때로 나를 생각하시며  기대를 버리지 못하셨다고하니 몸 둘 바를 모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대개의 여인들처럼 가정에 얽매여 충실한 아녀자로 머무르기 보다 진취적인 여성으로, 선각자적인 모습으로 사회의 일역을 해 나가는 슈퍼우먼이 되길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훌륭하게 걸어가는 아내나 부모로서의 길에서마저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한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안고 힘겨워했던 자신을 들켜버린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좌절하며 아파했던 못난 내 모습을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해, 지금껏 무언의 약속을 저버린 듯한 죄스러움은 지울 수가 없다.


  장마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여름 식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다. 수술을 받은지 며칠 후였다. 열이 있어  옷을 벗으셨다는 선생님의 가슴에 남겨진 길다란 수술자국을 보는 순간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자국에는 알레르기 증상을 보여 붕대마저 풀어놓고 있었다. 놀라워하는 내심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시며, 당신의 병은 위궤양이라고 오히려 나를 달래려 하셨다.  그 옛날 젊고 패기에  넘치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 올리며, 울컥 치미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대신 즐거운 표정으로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조심스럽게 나의 글이 실린 책을  선생님의 병상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반갑게 받아들고 펼쳐보시던 선생님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시던 그분께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한 줄이라도  작은 기쁨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그 긴 수술자국을 남기며 가슴을 열어야 했던 아픔을 감추시며 내내 웃으시던 선생님은, 뻐꾸기 우는 다음 해 봄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무슨 말로 선생님의 마음을 그려야할 지 아득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당신께 드린 실망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떠나신 선생님을 보듯  전화라도 자주 하라고 하시던 사모님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하지만, 해가 지나도 안부 한 번  전하지 못한 못난 제자를 선생님은 그리도 사랑하셨던 것이다. 사후에조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리도록 파란 저 하늘 어디에 계실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피어있길 빌 뿐이다.


  코스모스 흐드러지게 핀 교문을 들어서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이시은 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수록

 


 

비목 : 바이올린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