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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에서 만난 밀양백중놀이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22. 7. 18. 20:48

 

 

영남루에서 만난 밀양백중놀이

 

                                                                          이시은(시인)

 

고향 밀양에 들렀다 오랜만에 영남루를 찾아 누각 위에 올랐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으나 누각 위에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게 느껴졌다. 누각 위에 앉아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가지고 싶어 찾아간 것이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초석루와 더불어 삼대 누각으로 유명한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곳은 학창시절에 수시로 찾아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고, 교정에서 내려다보며 추억을 쌓던 곳이기도 하다. 웅장한 누각은 예나 지금이나 시원한 바람을 안겨주며 나를 반겼다. 때마침 영남루 마당에서 밀양백중놀이 공연이 있어 더욱 찾아간 의미가 있었다.

 

밀양백중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로 머슴들이 7월 보름경 진()날을 택해 농사일을 마치고 주인들이 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데서 연유하였다. 이와 유사한 놀이로 가장 힘든 농사일 논매기를 끝내고 호미를 씻어 보관한다는 의미로, 백중날 호미씻이라 하여 중부 이남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놀이가 있었다.

밀양백중놀이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놀이의 내용이 예술적이며 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밀양백중놀이는 상민과 천민들의 한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내용은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신제는 풍물을 울리면서 오방신장五方神將굿을 하고, 고사告祀터를 깨끗이 하는 잡귀 막이굿을 시작으로, 모를 심고 김을 매는 농사과정을 재연하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순서로 되어있다.

작두말타기는 머슴들 중에 농사가 가장 잘된 집 머슴을 작두말에 태워 풍물을 울리면서 놀이판을 도는 놀이이다.

춤판은 느린 장단에 맞추어 양반들이 춤을 추고 있으면 머슴들이 나와 양반들을 몰아내고 난쟁이, 중풍쟁이, 배뿔뚝이, 꼬부랑할머니,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래기, 봉사, 절름발이 등이 익살스러운 병신춤을 춘다. 범부춤은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장고쟁이 앞에서 재주를 보이고, 마지막으로 오북춤을 춘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북쟁이들이 어울려 북가락을 치며 춤을 춘다.

그리고 마지막 뒷풀이는 뒷놀이로 놀이꾼들이 모두 등장하여 서로 화해하고 뜻을 맞춘다는 의미로 벌이는 뒤풀이이다. 밀양백중놀이를 보면서 가진자가 가난하고 소외된 약한자들을 배려하고 함께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담겨있음을 보았다. 전부터 밀양백중놀이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다.

 

영남루 마당에 모인 백중놀이 공연자들이 풍물을 울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신나게 울리는 풍물 소리를 따라 모여든 관람객들이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장단을 맞추기도 하며 공연을 보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울리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익숙한 느낌이다. 밀양의 전통놀이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리라.

지금은 이 놀이가 사라져 민속놀이 공연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마을에서 이어지는 놀이였다. 무더운 날씨에 노동을 하던 마을 사람들과 머슴들이 논매기를 마치고 풍물을 울리며 노는 날이었고,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휴가를 주고, 술과 음식을 내어주어 머슴들을 놀게 하는 날이었다.

 

나도 관람객과 함께 풍물 소리를 따라 어깨를 들썩이고 박자를 치면서, 우리 집 상머슴이 작두말을 타고 뚜-- 하는 소리가 나는 기다란 나팔을 불며 신이 나서 놀던 모습을 떠올렸다. 한바탕 풍물을 울리고 마당 가득 모여 앉아 술과 음식을 나누는 모습들이 누에 선하다. 70세 전후의 사람들이 어릴 때 마을에서 백중을 기해 볼 수 있던 광경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들일 것이다. 이제는 민속놀이 보존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밀양에는 민속놀이들이 여럿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밀양백중놀이를 비롯해 지방무형문화재로 무안용호놀이, 감내게줄당기기. 법흥상원놀이, 작약산예수재가 있다. 그 외에도 밀양농악과 밀양새터가을굿놀이가 있으며, 춤으로는 밀양양반춤과 밀양검무 그리고 학춤의 일종인 밀양신선바위춤 등이 전해오며, 밀양아리랑도 유명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밀양에서 자칫 사라지기 쉬운 이런 무형문화유산들을 보존시켜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밀양에는 밀양아리랑대축제를 비롯한 문화행사가 많은 지역으로, 그런 행사를 통해 밀양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전승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더욱이 밀양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이 더욱 오래도록 밀양의 문화유산을 지켜나갈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밀양시와 보존회들이 노력하여 무형문화유산들을 보전해 오고 있음에 출향인으로서 고마움과 긍지를 느낀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