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행복을 가꾸는 마음 밭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22. 5. 3. 04:57

행복을 가꾸는 마음 밭

                                                                 이시은(시인. 수필가)

 

 

 

하얀 옥양목으로 만든 커튼처럼 창을 메우고 있던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이 지고, 어느새 연녹색 잎이 돋아나 창 가득 잎새들이 바람결에 손을 흔들고 있다. 거리 두기 제한을 풀면서 코로나로 집안에서 움츠렸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듯이, 며칠 사이에 움이 튼 나뭇잎이 몰라보게 자랐다. 어느 해 보다 더욱 봄을 알리는 꽃들이 반갑고, 새잎들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화원을 지나다 곱게 피어 있는 꽃을 사 와서 창가에 놓았다. 진분홍과 자주색 꽃이 녹색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화사하고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따끈한 차를 끓여 한 모금씩 음미하며 녹색 천에 붉은 꽃을 수놓은 듯이 보이는 창가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작은 물건이라도 마음을 담아 놓고 보면 사랑스럽다. 생명력이 없는 물건도 그러한데, 생명력으로 꽃대를 자아올려 피워낸 꽃이 아닌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꽃이 웃는 듯하다. 아니 꽃이 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웃고 있다. 꽃이 핀 화분을 창가에 놓고 차를 마시며 향긋한 차 향기를 맡으며 즐기는 시간이 행복하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더욱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그 동안 코로나로 인해 옥죄임으로 살아 온 시간이 길었기에, 여느 봄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올해 봄을 맞이하는 기분은 유난스럽다.

여러 색의 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색깔이 진분홍색 꽃이다. 초록의 배경이 넓게 자리한 곳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선명하게 돋보이는 꽃이 더욱 아름답고 꽃의 색깔이 더욱 초록색을 아름답게 한다.

나의 유년시절에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 입혀주던 한복의 유똥 치마 색깔이 진분홍색이었고, 친정집 마당에 피어난 꽃 앞에서 모시옷을 입고 웃고 계시는 사진 속의 부모님의 모습과 함께하는 꽃이 진분홍꽃 이었다.

그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며 오래도록 꽃을 피울 화초를 골라왔다. 오래도록 양지바른 곳에서 꽃을 피울 저 작은 화분은 내게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날마다 창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이 행복해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내가 이십 대 때부터 법정스님의 책들은 출간 할 때마다 사서 읽곤 했었다. 무소유』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 『나무들 비탈에 서다』 『오두막 편지』 『홀로 사는 즐거움...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많은 스님의 저서를 읽었다. 그 연유는 갈등을 많이 하던 20대 때 내가 마음에 안정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의 글은 난해하지 않으며 간결체로 썼기에 편안하게 다가왔다. 불교 정신이 깊이 담겨 있으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사고와 삶의 철학과 여유가 깃들어 있는 것이, 나를 한결 편안하게 하였고, 안정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텅 빈 충만을 비롯하여 스님의 글 속에 담겨 있는 비워 내는 마음에서 찾는 충만함을 온전히 실천은 못하더라도, 공감하며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느끼게 하였던 글이었다.

스님의 글 중에서 <무소유>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글이었다. 아끼고 사랑하던 난을 떠나보내고 소유하지 않으므로 얻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찾는 스님의 글에서, 꿈 많고 소유욕이 강하던 시절에 감동으로 읽혀지던 글이었다. 오래전 어느 문학 잡지의 추천하고 싶은 글코너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추천글로 보내기도 하였다.

나는 저 작은 화분을 바라보며 그리운 사람을 바라보듯 할 것이고, 더러는 우울한 마음을 꽃과 더불어 웃음으로 피워낼 것이며, 힘겨운 날에는 저 잎새처럼 푸른 생명력을 얻어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잡히지 않는 곳에 마음을 두고 욕심으로 불만을 하기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는 것은 나의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래도 문득문득 찾아드는 욕심이야 막을 길이 없겠지만, 작은 것에서 찾는 행복이 욕심의 무게를 들게 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는 스스로 행복에 젖어 든다. 저 작은 화분을 사랑하고 창가의 나무를 사랑하고 살다, 진정 저 꽃과의 이별이 찾아와도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난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고 싶다. 이 또한 욕심일지라도, 각박하고 어려운 세상살이에서도 비워 내며 스스로의 마음 밭을 가꾸는 것은 허락되지 않을까.

 

 

한국문학신문<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