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위한 기도 / 이시은
그 날을 위한 기도
이시은( 시인. 청하문학 고문)
바람은 차갑게 느껴져도 햇살은 완연히 겨울과는 달라졌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던 마음은 더욱 웅크려지고 얼어붙는다.
오미크론이 기세를 더해 확진자가 매일 이십만 명이 넘는 날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날마다 포격이 더해지고 있다. 침략자는 궁지에 몰리자 핵으로 위협을 하고, 동해안을 비롯한 각처에서 산불이 일어 온 산천을 벌건 화마가 휩쓸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시로 핸드폰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강풍에 미친 듯이 번져가는 불길을 잡고자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과 쉴새 없이 물을 길어 나르는 헬리콥터들이 분주히 오가나,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로 물을 뿌려야 하는 지점을 파악하기조 차 어렵다. 가스 저장 창고가 위험 범주에 들어가는 상황이고, 금강송 군락지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시의 일부가 불길에 처참하게 타버렸다.
무기를 들이댄 곳만이 전쟁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불길과 싸우는 전쟁을 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집이 화마에 소실되고 대피소에서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전쟁 피난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전쟁은 침략자가 계획하고 일으켰지만, 산불은 대체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부주의나 실수로 일어난다. 그런데 화가 나서 방화를 했다니 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나무를 키운다는 것은 건설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무는 세월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한두 해면 큰 공사를 시작하여 건축물이 생겨난다. 그러나 나무는 훨씬 오랜 세월이 지나야 숲을 이룬다. 금강송처럼 2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는 숲이 있다. 그러나 화마는 몇 시간이나 며칠이면 생각지도 못할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이번 울진 삼척 산불의 피해는 이미 8421㏊로 여의도 면적의 64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이 헐벗어 민둥산으로 있던 것을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산림녹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의 푸른 강산이 되었다. 산림청에서 일 년에 수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애써 키운 나무들이 불길에 싸여 있는 모습은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그 동안 우리는 발전과 편리함을 위해 가스나 오염물질로 환경을 더럽혀 왔다. 그 결과 나타나는 변화들은 우리에게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무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나무들이 화재로 대량으로 소실되고 있다. 대규모 화재도 대기 오염의 큰 영향을 미친다. 더글러스 캘리 박사는 “야생에서 일어나는 화재는 지구 탄소 순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산불로 인해 다량으로 방출된 탄소가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악화된 기후는 다시 산불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2020년 미국 서부의 산불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대기의 불안정으로 비가 오지 않는 날 무려 12000여 개의 번개가 내려쳐 수백 건의 화재를 발생시킨 화재였다. 대기가 불안정하여 생긴 천재지변이다. 지구가 온난화되면서 대기는 불안정해져서 곳곳에 홍수와 태풍과 눈사태를 일으키며, 빙하를 녹여 해수면을 높여 땅이 수몰되어 가고, 해수 온도를 높여 기류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숲을 지켜야 한다.
산림공무원들이 펴낸 『아카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애써 가꾼 나무들이 산불로 타버린 숲을 생각하며 애통해하는 글이었다. 산림공무원들이 강수량이 적은 겨울을 지나면서 건조한 날씨에 일어나는 산불을 걱정하며, 강우량이 늘어나는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까지 긴장하고 지내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듯이 숲을 지키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내는 그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강풍이 불 때 산불은 놀랍도록 빨리 확산된다. 불 뭉치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먼 곳까지 번진다. 며칠간 강풍으로 걷잡을 수 없던 불길이었다. 다행히 바람의 세기가 좀 잦아들어 불줄기를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는데, 울진 산불은 다시 확산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산불이 시작된 지 벌써 닷새째이다.
힘겨운 날들이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는 아직 기다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카시아 꽃은 피어날 것이다. 지옥 같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분들의 안전을 빌며, 코로나와 전쟁이 끝나고 산불이 소진되는 날을 기다린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