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21. 2. 17. 11:49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시은(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은 어느새 조금씩 변화를 느끼게 한다. 雨水우수는 눈이 물로 바뀐다는 뜻이고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하였으니 한두 번의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려보아도 봄은 어느새 준비를 하고 다가오고 있음이다. 어느 해보다 밝은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들과 새순이 기지개를 켜고 돋아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올해 겨울은 추위보다 마음의 냉기가 더 혹독했던 해였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지도 해를 넘겨 힘겨웠으니, 꽃 피고 잎 돋는 화창한 봄이 더욱 기다려지나 보다.

 

봄꽃을 보기에는 철 이른 어느 날, 잔설이 남아있는 산길에서 눈 속에 노랗게 꽃을 피운 복수초를 보고 기뻐하던 생각이 난다. 겨울에 볼 수 있는 꽃으로 동백꽃이 있겠지만, 산길에서 작고 앙증맞은 복수초가 눈 속에서 피어 있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연약한 꽃대로 노오란 꽃잎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고난을 이겨낸 승리자처럼 대견해 보였다. 작은 키로 서너 송이 꽃을 매달고 외롭게 피어 있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눈 속에 없는 듯이 피어 있는 그 꽃을 볼 수 있음은 행운이었다. 차가운 냉기에도 언 땅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워 올리는 놀라운 생명력은 겨울나기에 웅크린 마음에 위안과 용기를 일깨워주었다.

 

올해도 눈 오는 날이 잦았다.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서 산길에서 만난 복수초를 생각하며 봄을 기다린다. 나무들이 겨울을 나는 동안 땅속 깊이 뿌리를 묻고 봄을 준비하듯, 힘겨운 겨울을 나는 동안 우리도 조금씩 새로운 날들을 기약하며 봄을 향한 기대와 희망을 키우며 살아간다. 기다림도 막연한 기다림보다 기약된 기다림은 더욱 간절하다. 기다림은 설레임이 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계절은 한 번도 기다림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계절이 찾아오는 길목에 서면 더욱 기다려지는가 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은 계절 닮은 인연의 고리를 가진 사람들이기를 바라본다. 꽃피고 새잎 돋듯 즐거움도 함께하고, 바람 불고 눈이 와도 의연히 이겨내고 계절처럼 자리를 지켜내는 그런 인연이기를 소망한다.

 

사계절 중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서서히 고난의 길에서 희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칼바람이 훈풍으로 다가서고,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마음을 상쾌하게 하며, 삭막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계절 어느 때나 특색이 있어 나름대로 좋아하지만, 봄은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활기차고 즐겁게 하여 더욱 좋아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는 여러 징조가 나타난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위해 조용한 들길이나 산책길을 즐겨 찾아 나선다. 물길이 있는 개울가에는 어느새 버들강아지가 물오름을 하고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준비를 하고,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어간다. 얼레지 꽃도 꽃대 내밀 채비를 하고, 산수유도 꽃눈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자연 앞에서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느끼며, 힘겹다고 투정을 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봄을 맞이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자연은 소리 없이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을 어지럽혀 기후의 변화가 여기저기에서 이상 징후를 일으키고, 새로운 세균을 만들어 낸다. 기온이 변해가는가 하면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여 사계절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자연의 준비에도 차질을 가져와 어김없이 찾아오던 계절과 만남에도 차질이 생길까 염려가 된다.

 

나는 오늘도 가슴을 열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봄을 시샘하여 꽃샘추위가 눈보라를 휘날려도 강물이 풀리고 개울물도 풀려 얼음장 밑으로 봄기운이 녹아들고, 눈을 뚫고 복수초가 노오란 얼굴을 내밀고 봄을 전해 올 것이다. 가져다주는 행운도 잡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자연의 준비처럼, 지루하고 암울하던 겨울을 벗어나 밝고 환한 웃음 지으며 봄 마중할 준비를 해야겠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