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아름다운 여정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20. 10. 31. 18:49

                                                아름다운 여정

                                                                       - 제주 문학기행

 

                                                                                    이시은(시인. 청하문학회 고문)

 

나뭇가지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석양빛을 받으며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다, 아직 여운이 남아있는 제주의 기억을 떠올린다.

 

코로나로 문학 행사를 하지 못하고 지내던 터에 모처럼 전국 청하문학회 문학기행을 떠나는 마음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설레었다. 제주에는 청하문학 지회가 있어 비교적 자주 갈 일이 생긴다. 제주에서 전국 청하문학회 문학기행과 세미나를 몇 차례 하였는데. 이번에도 제주청하문학 낭송회서울 시단이 함께하는 낭송회가 기다고 있었다.

 

서울 시단은 청하 성기조 박사께서 만든 낭송회이다. 1990년대 말 동숭동 소극장에서 낭송회를 하던 무렵부터 함께하며, 초창기 시단이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상임 간사로 일했던 터라 남다른 애정이 가는 낭송회다. 이런 지방행사에 가서 함께 숙식을 하며 정담을 나누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회원들 간의 돈독한 정을 느끼게 된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가 참여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한다. 이번 제주행사 역시 집행부와 제주 회원들의 노고로 편안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합심하는 모습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있을 법 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한 준비와 서로를 위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3일 머무는 동안 웃음을 자아내게 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때문인지 마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느낌을 갖곤 한다. 오래전 처음 제주를 찾았을 때, 야자수 나무를 보며 느끼던 이국적 풍경에 가슴 설레던 기억은, 다시 갈 때마다 떠오른다. 마치 낮 선 타국을 다녀오듯 하던 제주도가 이제는 반가운 문우들이 있고, 소꿉친구가 사는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 정이 가는 곳이 되었다.

낭송회에 앞서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억새꽃이 손 흔들며 일행을 반기고, 코스모스도 여린 목을 갸웃거리며 반가움을 전해왔다. 비자림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키며, 생태계를 보존해 오고 있는 명소였다. 바람에 비자 열매가 땅에 떨어져 딩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열매를 까서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유난히 굴곡진 나뭇가지가 많은 비자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겪어 온 모습이 역력하다.

 

청량한 바람은 도심의 혼탁한 공기에 젖어 살아가는 나에게는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신선한 바람을 마시며 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소망으로 그치고 말아, 모처럼 자연과 더불어 보내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숲에서 나무의 친구가 되어 마냥 머무르고 싶은 것도 생각일 뿐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다시 찾을 기대를 남겨두는 것으로 생각하며 아쉬움을 접었다.

 

일행이 버스로 도착한 곳은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었다. 이곳에 있는 문우의 집 탐묵헌넓은 뜰에는 낭송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억새와 가을꽃이 피어 있는 작은 연못을 지나 마주한 정원 저 만큼에, 낭송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정원수에 걸려있고, 잔디밭에는 하얀 원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과 조화로운 지붕에는 와송이 송송히 돋아 만남의 반가움을 더하는 듯했다.

 

문우들이 낭낭하게 읊조리는 시가 가을 하늘을 수놓고, 저녁노을은 시와 어우러져 시향를 더하게 했다. 시와 노을과 시인들이 어울려 하나의 풍경으로 익어 갈 즈음, 노을은 조용히 가로등 불빛을 불러놓고 자리를 떠났다. 아름다운 제주도의 중 산간에 자리 잡은 탐묵헌정원에서 열리는 낭송회는 운치와 멋을 더하는 밤으로 이어졌다. 낭송이 끝나고 시작된 만찬에서 문우들이 어우러져 밤하늘의 별이 담긴 와인 잔을 부딪쳐 건배를 하며, 담소하던 밤은 제주의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행사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멀리서 온 문우들을 정성을 다해 맞이하던 제주 문우들의 정감 넘치는 얼굴이, 노을에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처럼 아름답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