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뒤에 맞는 추석 / 이시은
태풍 뒤에 맞는 추석
이시은
추석을 앞둔 시장에는 들뜬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상인들의 손길이 부산하다. 과일 가게에는 과일 상자들이 수북하고, 떡집에서는 색색의 송편들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손님을 기다린다.
경기가 침체하여 여기저기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음식점이나 상점들이 매상을 올리지 못해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들려오는 터라, 올해 추석 상인들의 매상은 어떠할지 염려가 된다.
추석 대목을 기다리던 어장과 과수원은 태풍 링링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10여 미터나 되는 파도에 어장이 뒤집히고 파손되어, 손 쓸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어장 주인의 어두운 얼굴과 수두룩하게 떨어져 내린 과일들을 바라보며 낙담하던 농부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수확을 위해 일 년 내내 공들인 노력과 노동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누구에게 원망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하고 억울한 심정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남겨진 것 중 성한 것들을 수확해 얼마라도 내다 팔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과와 배가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상품 가치가 있어 제대로 가격을 받는 과일과 질이 떨어져 가격이 싼 것들을 절반씩 샀다. 상품 가치가 떨어져 헐값인 과일에 눈길이 간다. 잘난 자식보다 못난 자식이 안쓰럽고 염려되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모르던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태풍으로 상한 과일이라도 그들에게 얼마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오래전 추석에 몰아친 사라호 태풍으로 수많은 수해를 입었고, 태풍 매미 때의 산사태와 태풍 사라에는 해일로 순식간에 초토화된 광경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라호 태풍은 내가 어려서 어른들이 강둑이 터지고 들판에 논이 유실되었다고 걱정하던 것이 희미하게 기억나지만, 태풍 매미와 사라의 피해는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히 보았다.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한 인간이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물난리를 걱정하던 것이 그나마 4대 강 공사가 있은 후로 현격히 줄었다. 자연의 힘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인간들이 맞설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발달 된 과학의 힘으로 미리 알아내어 최대한 방어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방재 책을 마련해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마련해 둔 방재 시설을 보존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60년대만 해도 우리의 산들은 헐벗은 산이었다. 조림으로 녹화를 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땔감으로 무분별하게 나무를 베어 쓰던 것을 산림녹화를 위해 금지하고, 식목일을 지정하여 국가주도로 조림을 시켜 오늘의 임야를 만들었다.
나무는 건축물처럼 마음먹은 대로 키울 수가 없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세기를 거쳐 만들어 놓은 산림으로 하여 홍수를 방지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어디를 가나 우거진 산이 보기 좋은 나라였다.
산림은 소중히 보존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거진 산림이 근래에는 사정없이 베어져 부스럼이 난 자리처럼 흉해 보이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자연의 훼손은 쉬우나 제자리로 회복은 수십 년이 걸려도 쉽지 않다. 마구 베어낸 산에 산사태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한두 사람일까.
추석 대목에도 폭우 주의 경보가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지난날 태풍으로 낙동강이 범람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 조이던 생각이 떠오른다. 태풍 링링으로 입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다. 피해를 당했던 사람들의 추석은 얼마나 어수선할까.
추석에 모여 않는 가족들의 가슴에 더 이상 침울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따뜻한 마음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가을 하늘처럼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태풍으로 힘겨운 사람들에게 추석 하루만이라도 웃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마저 송구함이 느껴진다.
한국문학신문<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