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정월대보름의 추억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9. 3. 15. 19:25

 

 

                                     정월대보름의 추억

                                                                        이시은

정월대보름 아침부터 흩날리는 눈이 내렸다.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던 겨울이었건만,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하는 날이라 하늘도 건조한 땅에 화재를 막을 생각이었을까.

 

일 년 중 보름달을 처음 맞이하는 정월대보름은 설과 더불어 큰 명절이었다. 정월대보름의 유래로는 삼국유사 기이 편 소지왕 이야기 사금갑射琴匣이다. 신라 21대 소지왕 즉위 10년 무진년에 천천정天泉亭을 방문했다. 이 때 까마귀와 쥐가 울며 달려와, 쥐가 사람의 말로 “까마귀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십시오.”하였다. 왕이 시종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여 남쪽 피촌에 닿았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어 구경을 하다 까마귀 떼를 놓치고 헤매는데,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 편지 봉투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적힌 봉투를 전했다. 시종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 왕은 “두 사람이 죽느니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하였으나, 일관이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임금입니다”고 하여 봉투를 열어보자 사금갑射琴匣(거문고 갑을 쏘시오)이라고 적혀 있어 궁에 돌아와 활로 거문고갑을 쏘았다. 거문고 갑이 쓰러지자 왕을 해하려 한 궁 내의 중과 궁주(왕의 첩실)가 밀애를 나누고 있었다. 왕은 화를 면하고 두 사람을 죽였다. 이후로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낸데서 정월 보름의 풍습이 생겼다. 이후 연못을 서출지라 불렀으며 경주 남산동에 있는 연못이다.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겨울에는 별다른 일이 없던 시절에는 설을 지내고 보름까지 이어지는 명절 분위기였다. 설에서 보름까지 세배를 할 수 있는 기간으로 어른들을 찾아뵙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하며 즐기는 기간이었다.

 

지금은 생활이 바빠 그럴 여유가 없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설부터 보름까지는 윷놀이나 늘 띄기를 하며 온 마을은 연일 축제 분위기였고, 보름에는 풍물놀이를 하며 지신을 밟았다. 꽹과리의 장단에 따라 북과 장구가 장단을 치고, 징으로 분위기를 띄우던 행렬은 집집마다 지신을 밟아 액운을 쫒고 한 해의 풍년과 행운을 빌었다. 선비와 여자 그리고 포수가 등장한 풍물패 행렬 중에서도 여장을 한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얼굴에 하얗게 분을 바르고 빨갛게 입술을 그린 모습에 애써 수줍음을 짓는 모습 있었다. 그 행렬 뒤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이 따라다녔고, 마을 사람들은 흥겨운 마음으로 구경을 했다. 한바탕 지신을 밟고 마당 가득 둘러 앉아 음식을 먹던 사람들의 표정은 가난한 시절 이었지만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해 먹었으며 부럼을 깨어 부스럼을 쫓고 귀밝이 술을 먹었다. 아이들을 이집 저집에서 오곡밥을 얻어 오기도 했다. 세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여겼다지만, 음식을 장만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아이들이 밥을 얻어오는 풍습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웃과 함께 명절인 보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달이 떠오르면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가 정월 대보름의 절정을 이룬다. 마을에서는 어김없이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 마을 앞에 달집을 지었다. 달맞이를 하며 타오르는 달집 옆에서 소원을 빌었다. 달집이 타오를 때는 청솔 타는 냄새가 코끝에 머물렀고, 빠알간 불똥들은 반딧불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보름마다 할머니께서는 달집 불에 구워 나누어 먹을 수 있게 콩을 담아 보내셨다. 할머니께서 주신 콩을 어른들이 불길이 잦아드는 숯불에 구워 한줌씩 나누어 먹던 맞은 고소하고, 마음은 불길만큼이나 따스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마을 사람들을 따라 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무슨 간곡한 바람이 있었을까. 그때의 바람은 공부 잘하게 해주어 우등상 받게 해달라는 것이 모두였다. 뒤돌아보면 소망이 하나뿐이었던 그 시절의 추억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각 지역에서 달집태우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재래시장에는 오곡을 불려 담아놓고 팔며 말린 나물과 밤. 호두. 잣. 땅콩들도 자리를 하고 기다린다. 나물을 볶으면서 보름 음식 준비를 하시던 할머니와 어머니 생각이 난다. 지신을 밟고 마당 가득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떠들썩하던 이웃들이 그립다.

 

재미 삼아 이웃에 가서 밥을 얻어오던 어린 내 모습과, 맑고 커다란 달이 산등성이에 솟아오르면 작은 손을 마주잡고 소원을 빌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나는 예전과는 달리 빌어야 할 것이 많아졌다. 그 옛날 하나뿐인 소원을 빌고 있을 때, 어른들은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많은 기원을 했으리라.

 

도심의 불빛으로 흐려 보이는 달이 구름 속에 숨어든다. 아침에 내리던 눈이 걷히고 달집태우기를 하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둥근 달이 떠오른 올해는 소원 하나를 더하여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한 기원을 더하였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