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생신 / 이시은
마지막 생신
이시은
어머니의 마지막 생신날이 떠오른다.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을 차리고 왔다는 말을 듣고, 잠자고 있던 그날의 아쉬움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주인 없는 모임은 빈자리가 두드러진다. 해마다 유월 그믐날은 온 가족이 모이는 연례행사였다. 친정어머니의 생신이여서다. 거리가 먼 곳에서 사는 여러 형제자매가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다녀 올 수 있는 어머니의 생신날이 가족이 모여 지내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여름이면 외갓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어머니의 생신을 위해 친정 나들이 길에 오르는 나 또한 아이들의 들뜬 모습이 무색하리 만치 설레임에 젖어 들었다. 친정집 대문을 들어서면 환히 웃는 얼굴로 맞이하시던 어머니는 우리들이 대문 밖을 나설 때까지 함께하며 즐거워하셨다.
보람되고 즐거운 일은 영원을 향해 길을 트고, 불행하고 괴로운 일은 마지막이기를 기원한다. 세월의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지만, 영원이라는 말은 존재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만남은 이별을 예정하고, 시작은 끝을 예정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예정된 일일지라도 생과 사를 갈라놓는 이별 앞에서는 더없는 그리움과 아픔을 삭여야만 한다. 어머니 연세 여든 여덟 해에 그 최악의 이별은 내게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마다 웃음꽃 낭자하게 피던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첫 생신은 우리들이 차리는 마지막 생신상이 되어,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슴속에 빗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평소 어머니께서 즐기시던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려 보지만,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타오르는 촛불만 자식들의 마음을 달랠 뿐이었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잃어봐야 부모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였다. 검불처럼 살아 계시던 어머니였지만, 어머니의 빈자리는 크기만 했다. 비 오는 날 호수의 수면처럼 수없이 가슴속에 파문을 일으키며 그리움이 인다.
남달리 진중하고 속으로 정을 품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울컥울컥 치미는 목메임은, 이승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내가 어머니께 진 빚인지도 모른다. 효성을 다하고도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는 마음에는 불효만 남는다는데 효성스럽지도 못했던 마음이야 오죽하랴. 자꾸만 불효했던 지난 일들이 불에 댄 듯 쓰라리고 따갑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찾듯이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앨범 속에서 찾아내었다. 평소 꽃가꾸기를 즐기시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시옷을 입고, 마음 담아 키운 붉게 핀 꽃을 따라 함박웃음을 웃고 계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컴퓨터에 올려놓고 바라보곤 한다.
부모의 모습조차 모르는 고아들에 비하면, 부모님이 오십 중반의 나이까지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하고 계셨던 것은 수없이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허전하고 서운함이 몰려오던 것도 주기보다 받기에 익숙했던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타성이 일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자책도 해 본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던 어머니의 길 앞에도 시계 바늘은 역행 할 줄 모르고, 그늘 깊은 나무 같던 모습에도 낙엽은 내려 끝없이 긴 동면의 세월 속에 자리를 풀었다. 동면의 시간을 흐르는 바람이 차가워도 어머니가 내게 주신 따뜻함으로 시간을 데워가며 마음을 추스른다. 어머니께서 생명의 섭리에 순응했듯이, 얼마만큼 더 세월이 흘러 맞이할 최후의 날에 남겨진 나의 그림자는 어떤 색깔일까.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친정집 정원에 유난히 고운 빛으로 흐드러지게 백일홍 꽃이 피어난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지만 주인 잃은 마당에 해마다 피어나는 모습이 생전에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뭉게구름 떠 있는 하늘에 눈길이 멎는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