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신문연재글)

아소산(阿蘇山) 초원을 달리다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7. 12. 17. 08:14

 

아소산(阿蘇山) 초원을 달리다

 

                                                                      이시은

 

불의 땅 구마모토 현 아소산 가는 길에는 빗방울이 일기 시작했다. ‘불과 비’라니 며칠간의 일정이 순조롭지 않을 듯 한 예감이다. 애당초 활화산 분화구를 보겠다고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쯤 시간을 내어 분화구를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시야를 바라보며 날씨가 좋아지길 기원 했다. 하지만 기대는 애당초 무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태풍이 일본의 남단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장대한 외륜산(外輪山)을 가진 아소산이다. 외륜산의 내측을 중심으로 하여 아소쿠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소산을 오르는 초입 길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삼나무와 측백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둥치부터 빽빽하게 잎을 달고 직선으로 솟은 장신의 키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 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본 삼나무들이 일본 강점기에 우리의 소나무를 베어가고, 일본에서 가져다 심은 것들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살아난다.

 

가이드가 태풍 영향으로 비가 올 것 같다고 아쉬움과 염려를 쏟아 놓는다. 구사센리를 거쳐 아소산에 위치한 숙소까지 오르는 길에는 비안개가 자욱했다. 다음 날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일정을 따라 움직였으나, 3일 째 되는 날도 비는 계속 되어 일정을 바꾸어 일행들과 쇼핑을 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해발 750미터 지점에 위치한 숙소에서 출발한 길은 주위를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9월 중 순, 아직도 서울에는 더운 날씨였으나 산악 지방인 그 곳에는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리만치 기온이 찼다.

 

창가에 비치는 풍경은 구사센리의 끝없이 넓은 푸른 초원만 바람에 넘실댄다. 바다 같은 초원에는 바람을 타고 이는 초록빛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초원을 향한 눈길을 땔 수가 없다. 시야를 가리는 비구름 때문에 원거리를 한눈에 보기에는 어려웠으나, 짙은 안개로 눈앞을 가리지는 않아 제법 시야를 터주는 것이 다행이었고, 비안개가 비켜가는 곳에선 원거리로 보이는 칼테라로 형성된 외륜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모습과,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을 천길 아래 풍경으로 볼 수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누비며 달리는 차안에서 일정이 바뀐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 했다.

 

이곳의 외륜산을 이루는 분화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칼테라로 자그만치 148킬로나 된다고 한다. 이 칼테라에 금이 가 물이 빠져나가 생긴 곳이 외륜산과 외륜산 안쪽 분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백두산의 분화구가 14킬로라고 하니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수백 만 년에 걸쳐 융기와 침하을 반복하여 만들어 낸 분화구 내부에 또 분화구가 만들어져 이루어 진 산이 아소산이라 불려지는 아소오악(阿蘇五岳)이다. ‘아소열반상’은 아소산의 5개 봉우리가 마치 누워 있는 부처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열반상의 배꼽 부분인 아소 나카다케(阿蘇中岳)가 지금도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이다.

 

차창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아소산의 초원지대와 외륜산의 안쪽 들과 마을 들이다. 아직도 불을 식히지 못해 연기를 뿜는 활화산이 있지만, 내려다보이는 산과 들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는 신이 보여준다고 한다. 이곳을 볼 목적을 두고 찾아가서도 화산활동이 심해 가스가 심할 때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화산의 분화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 할 때, 곡히 서운한 마음만 안고 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윳놀이에서 ‘도아니면 모’라고 했었다. 본래의 일정을 벗어나긴 하였으나, 활화산의 분화구를 보고자 함도 주 목적은 아니었으니, 차를 타고 바라보는 아소산의 광활한 초원을 만끽하며 이번 여행의 진 맛을 누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천혜의 초원에는 소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일본의 소들은 검은 소이나, 이곳의 소들은 검은 소도 있지만 황소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이 소를 아까우시(황소)라 부른다. 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놀러왔다 우리의 황소를 보고 반가워서 ‘아- 소’ 한 것이 아소가 되었다는 우스겟소리가 생각나 혼자 웃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온종일 비는 오락가락 했고 태풍이 온다고는 했으나 그리 바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갈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에는, 천길 아래로 보이던 평화롭던 들길과 마을을 따라 차가 달려, 외륜산 안쪽 칼테라 분지를 더욱 잘 볼 수 있었다.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 답게 숙소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어 날마다 피곤을 풀기에 더없이 좋았다. 초원의 꼭대기 지점에 있는 숙소의 20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아소 오악이 아쉬운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귀국하는 길에는 태풍 영향으로 구마모토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해 나가사키 까지 가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또 다른 길로 아소산을 내려 갈 수 있어 아소산의 초원을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태풍을 피해 가는 길은 평온했다. 그렇게 세찬 바람도 비도 만나지 않았건만, 우리가 태풍을 피해 나가사키 공항으로 가는 동안 구마모토 공항 쪽은 태풍이 쓸고 갔다. 신은 나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이런 때가 아닐까 한다. 비가 와서 망가뜨린 일정 때문에 아소산 초원을 여러 방향으로 구경 할 수 있었고, 더욱 먼 길을 가야만 했으나, 나가시키로 가는 길에 태풍을 피하고, 평화로운 일본의 전원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 있어 컴퓨터를 통해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 사진을 불러놓고 보고 있다. 신의 손을 놓쳐 분화구를 보지 못한 여행객의 아쉬움이 가득한 여행기에 아소산 초원을 본 감상문들이 눈길을 잡는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