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쉼터 청계천 / 이시은
도심의 쉼터 청계천
이시은
물에 담근 발이 시원하다. 개울물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얼굴들이 제각각이다. 차분히 물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사람도 있고, 다정히 어깨를 기대고 앉은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기도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소 들뜬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의 즐거운 모습들이 여름밤을 장식하고 있다. 폭염 주의보가 날아드는 날씨에 물길을 따라 더위가 가시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청계천의 밤 풍경이다.
몇 차례 청계천 변에 앉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물길에 발을 담그고 있어보긴 처음이다. 카메라를 메고나가 사진을 찍느라 오래도록 서있던 다리에 무게를 느끼던 차였다. 시원하기 그지없다. 서울의 한복판 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이 거대한 도심에서 흐르는 물길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음이 의심스럽다.
어린시절 고향 냇가에는 사철 맑은 물이 흘렀다.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멱감기를 하였으며, 물길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은 우리들의 놀이 였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내달리는 차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졌던 개울이다. 머릿속은 고향의 개울가에 앉아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보면 발을 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경험 때문인가 보다.
내가 이십대 때 처음 보았던 청계전, 그리고 사진속에 남아 있는 청계천의 모습들이 새삼 떠오른다. 조선시대부터 생활하수를 흘러보내는 하수천의 역할을 해 온 도심 천이다. 이 천변의 물길을 다스리는 것이 왕의 치적이리만치 중요한 일이었던 곳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하천의 모습도 같이해야 했었다. 조선시대에는 여인들의 빨래터였으나, 서울의 인구가 불어나면서 청계천은 오염되어 갔다. 꾸준히 준설을 해오던 하천 바닥을 일제시대에는 10년 가까이 준설을 하지 않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준설을 하였다.
일제시대 급격히 주변에 인구가 증가하여 오폐수로 오염이 되어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일제는 청계천 전면복개 계획을 세웠으나 태평로에서 무교동 까지만 복개를 했다. 6.25때 피난한 월남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차면서 온갖 오물로 극도의 오염상태를 만들었다. 교통과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8년부터 1977년에 이르러 마장동 철교까지 복개를 했다. 또 1967에서 1971년까지 공사로 최초의 도심고속도로인 삼일고가도로가 만들어 졌다.
이렇게 청계천은 완전히 시멘트에 묻혔고, 고가도로는 동서를 잇는 교통로가 되었으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붕괴 위험이 제기되어,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로 지금의 청계천이 만들어 졌다.
오물을 해결하기 위해 땅속으로 묻어야만 했던 곳에 맑은 물이 흐르고, 번잡하기 짝이 없는 서울의 도심에서 이렇게 발을 담그고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음이다. 이렇게 개천의 운명도 시대에 따라 변천을 했다.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 한평생 사는 것이 죽을 모퉁이라 했던가. 오랜 시간을 견디기란 자연이나 사람이나 녹녹지 않음을 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앉았다 보니, 주변 빌딩들은 창가에 밝은 불빛을 쏟아내고,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앉아 있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유난히 많이 띈다. 이 곳이 관광 명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음이다. 오염되어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던 곳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포즈를 취해주던 외국인들도 청계천의 추억으로 행복하리라 생각된다.
발 가까이 까지 송사리떼가 다가온다. 시골 개울에서 맑은 물을 헤치고 놀던 송사리이다. 많은 변화와 고통이 점철된 시간들이 함께 하였지만, 이토록 좋은 모습으로 다시태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모습이라 더욱 좋아보이나 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맑은 물이 흐르는 이 개울에 다시는 오염된 물길이 흐르지 않기를 바래본다.
열시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여유와 추억들을 맘껏 담아가고 싶어서 일까.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발을 간질대던 물길과 송사리들이 따라온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