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 수필방

은사의 모습

청담 이시은 2013. 12. 16. 14:00

 

                        은사의 모습

                                                                                   이시은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인연이 있지만 권정호 총장님과의  인연을 항상 소중히 여겨왔다.


 총장님과의 만남은 1970년 내가 밀양여고 1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진주여고에서  밀양여고로 전근을 오셨던 것은,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학하기 위해 교통편이 좋은 밀양으로 오셨던 것으로 안다. 그로부터  학위가 끝나는 2년 동안 나의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국어선생으로서 사제간의 만남이 되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같은 교사의 길을 가시는 사모님과의  사이에 남매를 둔 학구적인 분으로 항상 차분한 음성으로 설득력을 가지셨고, 진지하게 제자들을  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일찍 부친을 여의시고 여러 형제의 가장이 되어 동생들의 교육과 가사를 책임지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어렵게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겠지만,  어려운 여건 때문에 2년제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국립대학의  총장에 오르기까지는 남다른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형제분들을 같은 학문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시고,  당신께서도 교육계의 큰 자취를 남기심에 머리를 숙인다. 지금의 선생님이 계시기까지는 선생님의 곧고 깊은 성품과, 사모님의 남다른 사랑과 헌신의 열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여태 선생님을 존경해 오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선생님의 인격과 남다른 교육관 때문이다.


 여고시절 선생님의 수업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공부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의 수업시간은 하루종일 팽팽하게 짜여 있었다. 물론 국어 과목을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함께  했던 수업 시간이 지금까지 머리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의 여담 때문이다.


 선생님의 수업은 색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오분  정도는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어수선하여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 시간을 이용해 주변에서 일어난 사사로운 일들을 간추려 설명하시고, 당신의 견해를 붙여 여담을 하시곤 했다.


 주요 과목들은 교과 내용을 전달하기에도 바쁜 관계로  특별히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신경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들의 삶과 현실에 맞닿는 이야기로 제자들의 사고와 판단을 기르게 하셨고, 각자의 처신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셨다.


 선생님은 수업 내용에 있어서도 항상 철저하고 성실하게 임하셨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선생님의 모습과 함께 오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열강을 하셨던 수업 내용보다 수업시간마다 들려주셨던 여담 속에 곁들여 하시던 말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 더 큰 거름이 된 것 같다. 이것이  편중된 학문의 가르침보다 진정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교육자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을 구타하는 현실을  볼  때 말 못할 서글픔을 느낀다.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도 인간미가 결여된 사람보다는 그리 박식하지 못하더라도 인간미가 넘치고,  현명한 판단으로 살맛나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선생은 많아도 진정한 스승은 드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제는 흰머리가 성성하신 노교수님으로  제자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나와의 대화 속에서 "훌륭한 교수이기보다는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 말씀이 바로 제자들에게 이치를  깨닫게 하고, 바로 서게 하고자 한 스승님의 교육관이었음을 알았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교단에 서서 선생님의 교육관을 이어가길 빌어 본다.


 평생 교육자로서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후학을 가르치시고, 진주교육대학 총장  임기를 마치시고 영광스럽게 이임하시는 은사님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올린다. 항상 건강하시고 깊으신 학문과 연륜으로 후학들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시길 기원하는  나는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선생님의 여담을 듣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