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
모습
이시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벌써 오래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날씨에 밖에서 책을 읽는 노인을 찾는 것이 무리한 일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창 밖을 내다본다.
할아버지가 부르던 "가고파"의 노랫말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어리
고……"는 고향이 함경도라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생각되게 한다.
내가 그 분을 처음 본 것은 초여름 나뭇잎에 짙푸른 색깔이 감돌 무렵, 아파트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늦가을까지 날마다 창을 통해 같은 모습의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바깥 생활은 아침 식사시간 후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졌고,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정자에 누워 뜨거운 낮 기온이 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는 아파트 정원수와 어우러져 있는 의자와 정자에서 하루를 보내셨다.
전직 대학교수였다는 그와 해질 무렵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자로 나갔다가 만날 수 있었다. 독서량 만큼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의 술술 이어지는 이야기는 느긋한 시간을 가지고서야만 들을 수 있었다. 한창 교단에서 후학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가르칠 나이에 권고 사직을 당하고 뜻을 펴지 못한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함경도에서 경성으로 유학을 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는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집이 좁아 이곳에 머물면서 책으로 소일한다는 말 끝에 "자식을 잘 두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셨다.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자식을 책망하는 말인 듯 했다.
숱하게 들어온 말이었건만, 그 말은 여운이 되어 나를 따라왔다. 더위는 더욱 기성을 부리는 듯 했다. 선풍기를 켜놓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보았지만 도무지 편안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 연세와 비슷한 그 분에게서 들은 말은, 차마 입으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바로 나를 향한 부모님의 말씀인 것만 같았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옹색한 살림을 하고 있을 때, 모처럼 서울을 다녀가시던 부모님은 언니집에서 머무시기 일쑤였다. 유달리 체면치레가 심하신 부모님은 예전보다 좁은 집에서 시간에 쫓기며 바실대는 내 집에 계시는 것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녀가시지 않으면 서운해 할 새라 하룻밤을 지내시고는 자리를 옮기셨다.
중 고등학교 시절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택해 그룹과외까지 시켜주시던 부모님에게, 나는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귓전이 붉어진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보다 몇 배로 살기가 좋아졌건만, 나는 내 아이들에게 내가 부모님에게서 받은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배려를 하고 살 뿐이다.
넓은 집을 장만하고서는 바쁘다는 핑계가 덧붙어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지 못했다. 모처럼 다녀가시는 부모님에게도 불효만 하고 사는 내게 비하면, 좁은 아파트에서나마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그분의 아들은 잘 키운 자식임이 분명했다.
넓은 거실이 더욱 휑그르해 보인다. 이제 거동이 불편해 서울 나들이조차 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래 전 용돈으로 드린 지폐를 어머니가 가신 후 전화기 밑에서 발견하고 소리 죽여 울던 기억이 난다. 받지 않으면 속상할세라 말씀조차 없으시던 어머니였다. 부모 마음 따를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정자에는 어둠이 내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젊은 시절 꿈을 안고 불렀을 그 노래가, 이제는 음정마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으나 박자를 정확히 지키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연하다. "자식을 잘 두어야 한다"던 그 말이 가지 못하는 북녘 땅을 그리워하며, 소식조차 알 수 없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 자신의 불효한 아픔도 담겨있음을, 계절이 바뀌어 차가운 바람이 불 무렵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