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 이시은
자전거
이시은
자동차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백미러를 보았다.
남편과 함께 쓰는 차이고 보니 내가 운전을 하고 나면 의자와 백미러를 조절해야만 한다. 그럴 때마다 작은 거울 속으로 비치는 후광을 바라보곤 한다. 그 때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바싹 자전거를 들이대며
"어디 갔다왔어요?"
하면서 차 문을 열었다.
"응, 슈퍼에……"하고 트렁크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아들 녀석은 트렁크에 실려온 물건들을 아파트 안으로 날라다 주고는, 즐거운 모습으로 아스팔트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한 주일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오는 아이다. 휴일이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은 해방감과 시원하게 달려 볼 수 있는 속도감이 있어 좋다고 했다.
지난 해 시월 서울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들이 새 집이 기다리고 있는 중동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전에 살았던 집 주위에는 차량의 통행이 많은 터라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다. 한창 자라나는 아들 녀석은 입버릇처럼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자전거를 사 달라고 했다.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가을날,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 가게로 갔다. 평소 자전거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자전거의 다양함에 놀랐다. 핸들의 종류가 제 각각 달랐고, 자동차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기어 변속기가 자전거에도 있다고 했다. 기어 숫자의 높낮이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가게 주인은 기어의 변속에 따라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세련된 모습을 하고 늘어선 자전거를 호기심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수년 전 학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계시는 친정아버지의 쇄락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시골 머슴처럼 수수한 모습을 하고 아버지의 발이 되어 준 자전거가 향수처럼 찡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자라난 고향집 골목길에는 여름날 소나기가 한줄기 스쳐 지나가고 나면, 가난한 농부의 메마른 얼굴의 광대뼈처럼 돌멩이가 솟아올랐다. 팔 남매의 장남인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조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위해 이십 리가 넘는 길을 자전거로 통근을 하셨다. 비가 올 때면 실뱀처럼 굽은 길은 진흙으로 질퍽거렸다. 그 길을 따라 아버지는 검은 우의를 생활의 무게를 걸머지듯 입으시고, 마술사처럼 곡예를 하며 달려가곤 하셨다. 귀가길이 늦으실 때면, 늙은 황소의 우매한 눈망울처럼 라이트 불을 밝히고 좁은 골목길로 돌아오셨다. 마치 귀한 보물을 놓아두듯 자전거는 비를 맞지 않게 처마 밑에 소중히 세워 두셨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차인벨 소리와 함께 비디오폰에 비치는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비쳤다. 아이는 마치 개선장군이 지휘봉을 내려놓듯 자전거를 아파트 현관에다 세워두고 들어왔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아들아이보다 어린 유년시절에, 아버지는 아침저녁 눈보라를 헤치고 생활을 위해 향하는 출근길의 도구로 자전거를 타셨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항상 기름걸레로 광택이 나도록 자전거를 닦으셨고, 그리고는 그 자전거 바퀴가 녹이 슬 때까지 타고 다니셨다.
아이에게는 휴일을 즐기기 위한 자전거였고, 거기다가 요란스러운 치장을 하고 바람기조차 없는 아파트 현관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호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음 한 구석에 허허로운 바람이 스쳐간다. 어둠이 자욱한 밤길을 밟고 귀가하시던 아버지의 자전거에 기어 장치를 달아드릴 수 있었더라면,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했던 아버지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자녀들이 장성한 만큼 보름달의 우아함이 그믐달로 삭아 내리듯, 당신의 삶을 희생과 사랑으로 일관하셨던 아버지이시다. 지금쯤 아버지는 저녁 노을빛 짙게 드리운 동구 밖에서, 어슴프레 드러내는 산모롱이를 바라보며 자녀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유리창 밖 저만치 백발 성성한 두 부부가 나란히 산책하고 있는 모습이 이슬 맺힌 동공을 파고든다.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시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왔다.
-이시은 수필집 "울타리에 걸린 세월"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