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 수필방

사유의 자유 / 이시은

청담 이시은 2010. 2. 7. 15:56

 

 

                                  사유의 자유

 

                                                                                     이시은

 

 

 밤하늘을 밝히는 불꽃은 자유로운 생각처럼 아름답고 풍요롭다. 밤하늘에 파열음을 쏟으며 그려지는 불꽃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어린 시절 그토록 찬란하게 그려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꿈의 색채를 그려보았다. 어둠속을 파고 흐르는 선연한 불꽃. 혈맥을 타고 흐르는 생명수 같은 아름다움을 흩뿌리며 밤하늘을 수놓는 색색의 조화로움은, 미래를 꿈꾸는 나의 내면에 투영되어 갔다.

 

 살아오는 동안 깊이 각인되어 있던 불꽃놀이는 세월의 두께 만큼 서서히 퇴색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수 십년이 지나 쉴새 없이 쏟아지는 폭죽소리에 하늘을 수놓는 영롱한 불빛에 젖어들었다. APEC정상회담 기간 중 이었다. APEC정상 회의장이 있는 동백섬에서 바라다 보이는 광안대교를 기점으로, 광안리 해수욕장 앞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폭죽의 불빛보다 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 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APEC정상 회담에 참석한 각국의 정상들은 동백섬 언저리 회의장에서 유리창을 통해 불꽃놀이를 관람하고, 모래알 같은 사람들은 바닷바람에 온 몸을 적시며 불꽃바다에 젖어 있었다.

 

 아름다운 불꽃처럼 나의 생각도 끝없는 나래를 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생각의 날개는 자유로이 달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현실과의 거리가 있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생각은 꿈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생각에 조차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숨 쉬며 살아 갈 수 있을까. 아무리 튼튼한 호흡기를 가진 사람도 이내 질식하고 말 것이다.

 

 혼자 즐기는 사유의 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생각을 탓하지 않고, 내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때문에, 자유로운 생각을 즐길 때가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때로는 우울하고 슬픔의 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사유의 길에서는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꾸고 살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나게 노력하며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일 텐데 내게 주어진 자유, 그 자유로운 혜택에서나마 암울하고 우울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이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난 후배로부터 ‘곱게 살아가는 연유를 밝히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곱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면 그 원인이 무엇 일까 생각해 보았다. 별반 내 놓을 것이 없다.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되도록이면 구속 받지 않는 생각의 자유를 잘 가꾸며 살았다고 표현하면 될 성 싶다. 가급적이면 아름답고 즐거운 일을 생각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만큼 만 해 주고 바라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산다. 어쩌면 바보스러우리 만치 우둔하고 둔감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일조를 하는 듯하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내 본성을 무딘 칼날로 만들면서 나의 내면의 편안함을 얻고자 함이 어느 정도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것 보다 갖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그러하기에 나는 내 것이 아닌 것에서 행복을 얻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담장 넘어 다른 이의 정원수를 창 앞으로 끌어다 놓고 즐기고, 거리에 널려있는 가로수를 차창 안으로 끌어당겨 품어보기도 하며, 남의 행복을 함께 즐기며 산다.

우리는 끝없는 생각의 고리에 얼켜 지내며, 그 생각을 취사선택하여 발자취를 놓으며 살아간다. 어느 얼굴도 똑 같은 얼굴로 빚어지지 않았듯이, 어느 인생도 똑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다. 그 인생길을 운전하는 운전수는 생각이다. 생각이 풍요로우면 그것이 가장 부자가 아닐까.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가진 것 없고 내놓을 것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더욱더 필요한 사유의 잣대인 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운한 생각이 들면 ‘이 세상에는 나 혼자만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내려놓고 비우고 살고자 노력하여도 때로는 가슴에 가시 돋는 일이 생기지만, 조금은 손해 보는 것이 나의 잇속을 차렸을 때 보다 속이 편한 나이고 보면, 내 생긴 모습이 본시 모자라는 사람일 것이다. 남 보기에 다소 모자라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조금 모자라 보이면 어떠한가. 남에게 피해가 가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편한 대로 생긴 대로 살고 싶다. 이것조차도 욕심이라면 나는 오랫동안 사유의 방에 갇혀있어야 할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는 건물 안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으며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불꽃놀이를 즐긴 각국의 정상들이다. 그들이 바닷가에서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바라보던 나 보다 더 불꽃놀이의 설레임과 아름다움을 즐겼으리라 생각하지 않는 것도 나의 생각의 자유로움이었다.

 

2009. 5. 31 씀. 미리벌 발표